죽인다면 지금. 클라우디아한테 삶의 갈망을 빼앗는다면 이때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을 앞에 두고도, 얕궂게도 그걸 해낼 힘이 없다.
지금까지 몇천명이나 죽여왔고, 인간을 초월한 존재도 부숴왔다. 살인은 내 주특기로, 누가 상대든 지지 않을 자부가 있다.
그럴텐데, 얼마나 이상한 운명인가. 역대 최고로 죽이지 않으면 안 될 때에, 이런 다 죽어가는 여자 하나 맘대로 할 수 없어.
화내야 할지 한탄해야 할지, 아니면 웃을 수 밖에 없나. 그런 것조차 알 수 없게 됐다.
가까스로 움직일 수 있는 건, 입 뿐.
「널 죽이고 싶다」
절실히 그렇게 중얼거린다. 볼 품 없다든지 그런 걸 생각할 기분이 아니었다.
「죽이고 싶어, 클라우디아.
그러니 말해, 죽고싶지 않다고」
말해, 내 혼을 세워라. 너의 빛을 보여서 다시 밤에 날개를 펼칠 힘을 줘.
간원같은 살의이자, 위협같은 고백이었다. 정말이지 꼴사납지 짝이 없지만 난 이런 방식밖에 자신의 기분을 표현할 수 없다.
「네놈은 내거잖냐. 날 위해 활짝 피고, 날 위해 시들어라.
장미가 되어 생명을 내놔라. 그게 네 역할이다 빌어먹을 여자」
「천사는 아름다운 꽃을 내려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 싸우는 자를 말합니다.
제가 나이팅게일을 존경한다는 얘기는 했었죠. 지금 것도 그녀의 말이에요.
그러니 전 꽃보다 천사가 되고 싶어. 당신같은」
「당신을 좋아합니다 빌헬름.
내게 이 마음을 주기 위해 싸워 준 천사를 클라우디아는 사랑하고 있습니다」
대체 언제쯤 날 실망시킬거냐 마사다갓...
[봇찌 -> 니트 -> 히키 -> 바보 -> 약쟁이 -> 스토커] 역대 라스트보스 계보.
솔직히 처음 베이 정보가 떴을 때는 뭐 재미야 있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완전신작을 보고싶다, 디에스 이야기는 이제 더 할 거도 없지 않나, 무리해서 이야기 짜낸거 아닐까 등등 우려를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갓은 갓이라고 이카베이도 굉장했습니다. 만선진이나 이카베이처럼 팬디스크격이나 외전을 만들어도 그냥 대충 서비스만
하고 말겠다는 도리 따위는 없으신 듯. 만선진은 팔명진을 완성시켜주는 역할을 했다면 이카베이는 이미 완결성 높은 디에스이레의
이야기에서 또 하나의 뜨거운 작품을 파생시켰네요.
베이군이 질투가 많답니다
마사다의 디에스 시절 스토리텔링은 솔직히 난잡한 구석이 많았습니다.
워낙 플레이시간이 긴 탓도 있었지만 떡밥이나 그 회수를 여기저기 흩뿌려놓았다는 인상이 강했거든요. 설명도 불친절한
편이라서(쓰면서 생각해보니 그냥 니트 탓인 거 같다) 단번에 깔끔히 이야기를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도 많았습니다. 전신관 시리즈로
넘어오면서 여러가지 스토리플롯을 시도하는 등 발전을 계속했던 마사다지만 하나 아쉬운 점은 모든 떡밥을 풀어줄 때(팔명진에서는
요시야와 아라야의 첫 대화, 만선진에서는 시즈마가 시쨩의 진실을 설명해주는 대화) 단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풀면서 설명 장면의 길이가
너무 길었던 점이었습니다. 마사다 본인도 그렇게 느꼈는지 전에 트윗에서 이런 씬이 엄청 길어진 건 자신의 설명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했던 바 있습니다. 이런 단점이 이번 이카베이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적당히 필요한 떡밥은 필요한 곳에 박아넣고
회수도 딱 해야할 곳에서 하면서 깔끔한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진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베이와의 사랑이야기가 제법 로맨틱한데 진짜 언젠가 오토메게 쓰는거 아닐까
그냥 플롯 자체도
역대 마사다작 중에서 가장 뛰어났습니다. 액자식 구성은 딱히 흠 잡을 곳이 없었고, 이야기도 기승전결이 제대로 이루어졌으며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플롯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카베이 전까지는 이런 구조가 가장 뛰어났다고
생각했던 마사다작이 카카카였습니다. 이카베이의 플레이타임이 짧은(얼추 10시간) 덕도 있었지만 여튼 카카카 이상으로 깔끔했다고
느꼈습니다. 베이의 인터뷰가 끝난 후 막판에 약간의 유희를 더해주는 등등 하나의 깔끔한 명화 한편 봤다는 느낌이었음. 여태
마사다작의 이야기가 꼭 결점이 따라다녔다면(디에스는 난잡함, 팔명진은 히로인들, 만선진은 쓸데없는 시스템과 또 그 원히로인들 등)
이카베이는 단점을 최소화시킨 작품이라고 봐도 될겁니다. 지적하고 싶은 곳이 없는 마사다작은 처음이었음.
그야말로 주인공
마사다의 이야기에서 항상 가장 눈여겨 보는 곳은 바로 캐릭터들의 인생관입니다. 캐릭터들의 갈망이나 꿈이 그대로 힘이 되는 마사다식
배틀관이기에 그만큼 이 캐릭터가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을 목말라 하는지가 최고의 구경거리. 그런 캐릭터들의 이야기나
사상을 짜내는 능력이 마사다의 최고의 강점이기도 하구요. 이카베이 캐릭터들이야 디에스에서 거의 다 보여준 애들이기에 새로운
구경거리라 하면 메투세라(어둠군)와 클라우디아. 클라우디아의 반반 드립이나 빛을 원하는 설정은 딱 베이의 히로인 위치로서 적당한
사상이긴 했습니다. 문제는 메투세라 쪽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역대 마사다 악역 캐릭터치고는 이렇다 할만한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쓰레기력이 떨어지는 건 둘째 치고 인생관 역시 딱히 재밌지는 않았거든요. 자연의 의인화라는 설정이나 의외로 강한
캐릭터라는 점은 좋았지만 말이죠. 발매 전부터 디에스 세계에서 렌 패거리 말고 흑원탁한테 싸움 걸 수 있는 애가 있나 의아했었음. 거
옛날에 나왔던 드라마cd에서 흑원탁한테 쌈 걸던 애들은 슈피네한테도 털리던 자코들이었잖아요! 뭐 여튼 생각보다 강한 녀석이었어도
캐릭터적으로는 딱히 재미를 느끼지 못한 어둠군이었습니다만 우리의 주인공 베이와 대립하는 위치로서는 좋지 않았나 합니다. 한
여자를 두고 싸우는 두 남자의 대립이라는 의미보다는 서로의 가치관이 완전이 대립했거든요. 그게 바로 둘의 뜨거운 주먹다짐에서
드러나는데, 비슷한 대결이었던 팔명진의 수염군과 마조군의 싸움에 비해 훨씬 좋았습니다. 그쪽은 아무래도 수염군의 인생관이 별
재미가 없기도 했고 아가씨를 두고 싸우는 모양새가 그렇게 뜨겁진 못했거든요. 뭐 여튼 다시 돌아와서 베이와 어둠군의 주먹다짐에서
서로 정반대의 사상을 부딪히는 장면은 굉장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어떤 캐릭터를 볼 때 거창한 대의니 뭐니 그딴거보다는 인간으로서
'공감'가는 생각을 가진 캐릭터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베이한테 완전 이입하면서 신나게 즐겼습니다. '속물이 뭐가
나빠!'라는 대사는 정말 속시원한 뜨거운 한마디.
누나이자 어머니이자 연인이자 여동생
베이의 인생관이야 이미 전작들에서 다 보여줬긴 했지만 본격
단독주인공으로 나오면서 그 묘사가 더해져서 즐거웠습니다. 디에스의 렌같은 경우는 갈망히 딱히 재밌는 편도 아니고 그 묘사 자체도
부족했기 때문에 높이 평가하기 어려운 주인공이었지만 베이는 이번 작에서 주인공의 역할을 완벽히 해내더라구요. 마사다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곳 중 하나가 악역의 묘사나 매력에 비해 주인공 패거리의 그것은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었죠. 그점에서 베이는 마사다작
최고의 주인공. 사실 이미 완성한 캐릭터를(그것도 마사다의 장기인 악역캐릭터였던) 그대로 써먹었기 때문에 아직 마사다의 주인공
만드는 실력을 재평가하긴 이르긴 하지만요. 뭐 여튼 흥미깊은 인생관과 과거를 가지고, 극한의 역경을 경험하면서, 심리적인 묘사가
확실한, 그러면서도 딱 어울리는 히로인과의 사랑이야기, 인간쓰레기지만 '내 여자 내놔!'라고 소리칠 수 있는 주인공스러움 등등
정말 좋은 주인공이었습니다. 어둠군과 흑원탁의 대결 중 시점이 Interview with Kaziklu Bey로 바뀌며 베이가
등판하는 씬은 정말 꼬츄가 발딱발따악. 그 후에도 냅다 두들겨패는 열혈배틀이 렌보다 훨씬 뜨거움.
이분들 신나셨음. 니트쨩 저 자세 왜케 섹시하냐
베이 외에도 흑원탁 멤버들의 재등판은 팬서비스로 최고였습니다. 특히 니트쨩의 그
우자스러움은 팬티 살살 적셔주심. 흑원탁 애들은 니트쨩이 얼마나 좆같을까! 특히 막판 니트쨩의 저주는 정말로 그다운
행동이라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무대연출가 니트쨩...
베이의 연애상담을 들어주는 착한 친구들...
마키나, 슈라이버, 베이의 삼파전은 정말 ㅋㅋㅋ 재미도 재미지만 싸우는 이유가 진짜 웃겼음 ㅋㅋㅋㅋㅋ 차인 베이를 위로해주는 정겨운 동료들...
할망구(루사루카)는 여전히 당하는 역할이라 또 웃겼습니다. 그 색깔감정 드립은 꽤 흥미로웠음. 의외로 친한 베이와 자미엘이라든지,
평소에도 죽 잘 맞는 베이-베아트리스-할망구라든지 의외로 좀 야하게 나왔던 리자라든지, 우리의 능력자 슈피네군이라든지! 여전히
보스의 귀감이신 황금아재라든지 등등 즐길 요소가 많았습니다. 특히 디에스의 황금vs니트전처럼 수라화 된 흑원탁 말고도, 평소의
흑원탁 파티의 싸움을 보고싶었는데 이번 vs어둠군에서 정말 만족했습니다. 얘들 정말 주인공 파티스러워서 막 신났음.
이렇게 이야기는 디에스이레로 넘어갑니다.
오프닝도 역대급. 뜨겁게 열창해주시는 우리의 주인공 베이군과, 잘 짜잡기한 영상의 조합은 정말 뜨거웠습니다. 만선진의 오프닝이
노래로 보나 영상으로 보나 역대 최악이었기 때문에 별 기대 안하기도 했었고. 라이트가 pv는 참 잘 만드는데 오프닝은 항상
애매했거든요.
흑원탁 애들 생각보다 사이 좋더라
요나오의 브금이야 당연히 보증수표. 오프닝, 오프닝 어레인지, 메투세라 테마곡 등 신곡도 다 좋았고 오랜만에 듣는 디에스 브금도 반가웠습니다. 발할라도 한번 써주더라구요!
무엇을 위한 전연령이었나
또라이같은 베이를 잘 그려준 유우스케의 그림도 역시나 건재. 히로인 비주얼도 꽤 좋았지만 못 벗겨서 문제. 아니 벗기기야 벗겼지만
전연령이라서 유두는 못까잖아... 애당초 전연령으로 낸 이유도 모르겠고. 그리고 액자식 구성을 염두에 둔건지 스탠딩cg에 묘한
효과를 줬는데 꼭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는 음...
난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원했던 상대야말로 놓쳐버린다.
언제나 언제나, 카지클 베이의 이름을 받고 나서 언제나 부정해왔지만, 이젠 반론할 수 없다. 난 빼앗기는 자이며, 그런 저주에 침식당하고 있다.
알비노로서 태어나 낮의 세계를 빼앗겼다. 더러운 혈통을 청산하고 다시 태어났다 생각했는데도 파괴의 사랑을 관철할 수 없었다.
만선진 이후 즐긴 1년만의 마사다는 여전히
갓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하나 정도는 날 실망시킬텐데 정말이지 바닥이 보이지 않는 분. 한 글쟁이의 신도로 살아가는 게 이렇게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아마 다음 신작은 디에스 애니화 때문에 꽤 오래 걸릴테니 아쉽네요. 그리고 애니화는 이카베이 쪽이 훨씬 쉽고
깔끔했을텐데 음... 뭐 여튼 내년에 방송할 디에스를 기다려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