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짧은 걸로. 사실 세-지의 인생을 보여주기엔 뒤에 나오는 그의 수기가 더 적당합니다만 길어서 포기하고 에리코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지로 대신. 여기서는 안나오지만 둘이 정을 나눈 후(그니까 섹스 하고나서) 뭔가 착각하고 있는 듯한 에리코를 보니 빡쳐서 뺨다구를 후려갈겼다는 일화가 좀 재밌었습니다.
'마음은 물건 따위가 아니다'라는 말과 '평범한 가정을 가지고 싶다'는 에리코의 소원은 8층 클리어 후 세-지와의 대화에서 다시 나오죠. 그리고 만선진에서 결국 성취. 신좌만상 때도 그랬지만 불행한 결말이 나는 캐러들의 관계를 후속작이나 애프터 등에서 훈훈한 결말로 완결내곤 합니다.
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가정이 약했다.
거기에 이유가 있다고 하면 있고, 없다고 하면 없다. 다른 집보다 다소 복잡한 집이었음은 확실하지만 그렇다 해서 특별히 이상하다 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내 어머니는 소위 후처로서 난 그 의붓자식이었다. 즉 아버지와는 피가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그 후에 남동생이나 여동생이 태어나지도 않았으니까 혈연이라고 하는 인연을 일가에서 공유하는 일은 끝까지 할 수 없었다. 정말로 그것뿐. 말했듯이 보통과는 다르지만 과장해서 생각할 정도의 일도 아닌, 가끔 있는 이야기.
아버지에게 미움 받거나 무언가 당한 일도 없었다. 딸로서 귀여워 해주었고 과도하게 응석부리게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매우 당연한 집이었을 것이다. 따로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모르고, 따라서 가르쳐 줄 필요도 없다. 어쩌면 그것이 문제였을까 지금은 생각한다. 가정의 사정 따위 선전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 나 자신도 뭔가 불만이라 할 것도 없었으니까 누구에게도 이 일은 말하지 않았다. 숨길 작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버린 것은 사실이 사실로서…… 마치 우리집은 부끄러운 집이라고, 그런 공기가 가족 사이에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거짓말도 계속 하면 진실이 된다든지 어떤 의미로 긍정적인 말이 있지만, 그것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으로 가족 전원이 주위에 진실을 애기하는 타이밍이 빗나가 버렸다. 에리코씨의 아버지는 멋진 사람이네. 따님은 사랑스럽네요. 남편분과 눈매가 딱. 등등등 여러 가지. 감사합니다. 그렇습니까. 예에, 자주 듣습니다. 나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거짓말 한 적 따위 없지만 나날이 오해는 쌓여가고, 아뇨 다르답니다 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은 아니게 되어버렸다.
지친다. 매우. 굉장히 곤란하다. 대외적으로는 계속 밝게 대응하고 있는 반면에, 집안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더는 참을 수 없는 공기로 가득 차 갔다. 공범자들. 이 가장 가까운 표현이겠지. 본래 품을 필요가 없는 죄악감이라든지 수치라든지, 누군가 참지 못하고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닐지 하는 두려움이라든지…… 서로 견제하고, 서로 지키는 듯한 나날이 계속되어, 어느덧 난 가족에 약하게 되어 있었다.
특히 어머니는 궁지에 몰린 듯하여 매우 아이를 가지고 싶어했다. 그게 이뤄지면 일발 역전. 자기들은 따질 것도 없이 누구에게도 부끄러울 일 없는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도리도 알고 기분도 안다. 그렇지만 그때 이미 적당한 나이가 되었던 나로서는 이제 와서 부모의 그런 점은 보고 싶지 않았고 어머니도 이미 적령기가 지났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꽤나 가망이 없는 것이었고 통속적으로도 그 나이에 아이를 만든다니 체면이 안 섰다. 집의 수치가 늘어난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 가족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 점은 자기혐오가 치밀었지만, 실제로 싫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난 정당한 가족이라는 것을 동경했다. 어머니가 할 수 없다면 내가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이 정말로 사소한 일로 이상해진 자신의 집을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을 터. 원래 사랑해야 할 사람들인 부모님을. 그런 그들을 꺼림칙하다고 생각해버린 속죄로. 내가 어떻게든 한다. 해보겠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난 그와 만났다
히이라기 세이쥬로…… 그는 극단적인 남성이었다. 겉치레로도 인격자라고 할 수 없는, 오히려 최악의 범죄자조차 두려움을 느낄 만한 위험인물. 알고 있다. 알고 있고 느끼고 있다. 나처럼 특별할 것도 없는 여자가 보기에도 그는 즉석에서 간파할 수 있을 정도의 파탄한 인간이었다. 가까워져서도 안되고 관련돼도 안된다. 저건 내가 요구하는 정당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농담도 안 될 정도로 동떨어져 있다. 그렇지만. 아아 그렇지만, 그런데도 난……
「너가 필요하다. 내 도움이 되는 것이 좋을거다」
그의 도움이 되고 싶다고 강하게 생각했다. 이, 눈물이 날 정도로 끝나있는 남자를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너져 버려. 오만하고 탐욕스럽고 단지 혼자서 전세계와 싸울 수 있을 것 같은 자부의 남성이면서, 모래성처럼 덧없이 약해. 그를 알면서도 무시한다는 행동은, 정상이길 바라는 인간일수록 불가능하다고 알아버렸다.
사랑받지 않는다. 알고 있다. 필요하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둘도 없음은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것은 자신뿐으로, 그 외에는 모두 마찬가지다. 히이라기 세이쥬로라는 남성은 모든 것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모두 마찬가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도구. 자신이 존재하기 위한 먹이. 옷이나 음식과 똑같이 없으면 안되지만 그렇기에 특별함 따위 한조각도 없다. 거기에 감사, 공경 같은 걸 하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몸이 탐내고, 이몸에게 쓰이기 위해서만 준비되어 있는 것이니까 단지 권리를 행사할 뿐. 뭐가 나쁘지? 그것이 히이라기 세이쥬로라는 남성의 인생에 있어 기본칙.
마치 신님같은 사람이다. 소나 돼지는 사람에게 먹혀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니까, 그것은 당연한 일이자 자명한 이치. 그렇게 믿고 있는 그의 앞에서는 어떤 도덕도 피상적으로 된다. 따라서 그가 그때 내게 요구했던 것은 말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내 아이를 낳아라 에리코」
의미는 없다고 알고 있다.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난 고집이 생기고, 사랑이 있고, 정이 있고 구애가 있어…… 가족을 원한다는 소원이 있어서.
「네. 당신, 기꺼이」
그것이 하나의 투쟁이 되었다. 내가 당신의 아내가 된다. 당신의 아이를 낳고,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내 아이가 반드시 당신을……
그와 몸을 섞고, 정을 받아, 대신 빼앗긴 것은 그런 나. 어리석다든지 추악함이라든지 분함이라든지 천박함이라든지…… 혹은 사랑으로 일괄할 수 있는 히이라기 에리코. 그러한 부분. 그의 손안에 있는 에리코는, 그리하여 사랑 밖에 몰라서…… 사랑의 의인화니까 분명 광기의 여자겠지. 어째서 저런 남자를 사랑하고 있냐고 백만번 물어도 대답은 마찬가지. 그치만 좋아하는걸. 그것밖에 말하지 않는다. 그것밖에 없으니까.
교환의 타이밍 자체는 분명 좀 더 뒤겠지만. 진정한 의미로 빼앗긴 것은 이때. 이 악몽의 발단이 된 지금 이 시대.
요시야, 요시야…… 내 아가, 사랑하는 아이. 폐를 끼쳐 미안해요. 내 고집에 말려들게 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이것만은 믿어줬으면 해. 나는 널 사랑하고 있답니다. 사랑이라는 개념을 자신의 안에서 빼앗긴 지금도 그것만은 강하게 말할 수 있어. 왜냐면 그것은 반드시 무한히 솟아오르는 것이니까. 그 사람은 그걸 알지 못해. 사람의 기분도 영혼도, 훔치고 이용하면서, 쓰고 나면 버리는 도구로밖에 보지 않아.
그러니 너가 가르쳐주렴. 마음은 물건 따위가 아니라는 걸. 그게 내 싸움의 진.[각주:1] 무운을 빌어요, 사랑하는 요시야.
戦の真(イクサのマコト) 전신관 시리즈에서 자신의 꿈의 핵심에 해당하는 말. 신좌만상 시리즈로 친다면 갈망와 일치. 싸움의 진실, 이쿠사노 마코토 등등 뭘로 번역할까 고민했지만 일단 싸움의 진으로.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