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전에 이어서 바로 튀어나오는 명장면. 고조전도 그랬지만 이 파트 역시 팔명진에서 가장 좋아하는 씬 중 하나. 세지가 머머리한테 수정펀치를 몇번이나 먹고나서 누구나 그의 참회를 예상했을 겁니다. 그러나 역시 마사다의 악역이 그정도로 끝날리가 없었고 고조의 노력은 물거품이 됩니다. 사실 이미 세지의 마음 속에는 고조들의 영향이 남아있게 되지만요. 여튼 이 장면에서 신노의 질척질척한 대사와 연기, 내용 등의 임팩트가 쇼킹했었죠. 게다가 그런 점을 더욱 돋보이게 했던 것은 앞에서 고조전과 대비되는 모습이 더욱 극명했기 때문. 고조한테 수정당하면서 처음으로 타인을 알고싶어하며 자신의 길에 미혹을 품은 세지 -> 신노의 꼬드김으로으로 그 미혹이 바로 분쇄. 이런 전개는 앞의 뜨거운 분위기와 뒤의 질척한 분위기가 더욱 대비되면서 생각 이상으로 굉장한 파트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고조들한테 당한 뒤 또다시 이빨 까러 온 신노를 보며 참으로 시시한 존재라고 느끼는 세지, 그런 그를 비꼬면서 그의 절망과 악인의 말로는 고작 그런게 아니라며 꼬드기는 신노, 그리고 마음을 다시 잡고 일어서는 세지. 모든 묘사의 임팩트가 굉장합니다. 신노의 악마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났던 부분이기도 하죠. 그리고 한편으로는 신노의 그런 모습 속에에는 '증오'라는 근본이 숨어있다고 묘사됩니다. 나중에 미즈키vs신노에서 중요한 부분.
계속 언급되는 세지에게 약속한 최고의 절망, 악인의 말로가 무엇인지는 8층 세이쥬로전 후에.
♣ 제가 상반기에 바빠서 번역은 7월 이후에 다시 할 생각입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더 일찍 할 수도 있는데 어떨지는...
☞ <마사다 타카시> DC 마이너 갤러리를 다른 분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저 마이너 갤러리 정책이 얼마나 잘 굴러갈지는 기대 안하지만 만들고 손해볼 일은 없겠죠 뭐. 마사다 신작 시즌이든 디에스 애니 시즌이든, 아니면 평소에도 마사다 작품에 대해 떠들고싶은 분은 그쪽에 등판하셔도! 채팅방 밑에 있는 링크에 추가해뒀습니다.
「────,……」
이윽고 잠에서 깨듯 몽롱한 의식이 부상했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칠흑으로 물든 밤하늘 뿐. 위를 향해 땅에 드러누우면서 멍하니 세이쥬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분석하고, 그리고 답을 짐작해낸다. 그때부터 고조와 난투, 몇 번이나 주먹을 교환했다. 그에 결착은 내지 못하고 눈치채보니 상대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그건 아마도 요시야가 한단에서 빠져나간 영향일 것이다. 권속인 고조 역시 함께 연좌로서 사라졌다. 전진관 무리들처럼 다시 이 계층에 돌입할 일도…… 자신과 만날 일도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 무료함을 반추하며 무심코 코웃음 친다.
「……쓸모없는 시간을 보내버렸군」
정말이지 이 얼마나 촌극이었나. 요시야는 어찌 됐든, 고조와의 일전은 한단의 꿈에 대해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계층의 공략에 공헌도 못하고, 다른 세력이 득을 볼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작 세이쥬로 개인을 약간 괴롭혔을 뿐인, 결과를 보건데 그뿐인 일이다. 게다가 그마저 마음만 먹으면 바로 치유할 수 있는 손상이다. 정말 조금만 꿈을 쓰면 이 상처나 권태감은 졸음이 깨듯 금방 사라질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화가 난다. 완전히 희극, 도움이 안돼. 아아, 역시 저건 어찌할 도리 없는 등신이다. 빈껍질 주제에 튀어나와서는 헛걸음만 하게 해버렸어. 난 여전히 연투 가능. 단순한 심심풀이에 저렇게 몸을 던지는 신경을, 애당초 세이쥬로는 알 수가 없었다. 알 수가 없었지만, 그러나.
「……」
일어날 생각이 안드는 것은 대체 어째서일까. 기가 빠진 것처럼 몸을 움직일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대로 자는 것도 괜찮겠다며, 권태감에 몸을 맡기고 싶어진다. 수고를 들게 한 탓에 피로해진건가. 생각해보면 촌스러운 난투같은 걸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일어나기 귀찮게 되자 그대로 요람같은 기분에 휩싸여 눈을 감았다. 지금은 편하게 자도록 하자, 라며. 그때였다. 공기가, 자신과 필적하는 배덕의 마(魔)로 탁해진 것은.
역시나 눈을 뜨자 앞에 있던 것은, 들여다보고 있는 악마의 모습. 혼돈을 집적한 무모(無貌)가 가까이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신노……」
「이야, 세-지. 꽤나 멋쟁이가 되어버렸네」
입을 열자마자, 단 눈깔사탕을 핥듯이 악마는 야유를 한다. 스며나오는 친애의 정은 고조와는 정반대다. 혀끝에서 썩은 독이 파리떼와 함께 흘러내리고 있다.
「아들한테 지고, 우정한테 지고, 비참하네에. 불쌍하네에. 기분은 어때? 이만큼 몰아 넣어지기는 처음이잖아. 부디 난 그 감상을 들어보고 싶은걸」
상처에 소금이나 겨자를 바르고 싶다. 그런 비열한 악의가 비쳐지는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이 악마는 패배자에게 채찍질 하는게 즐거워서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언제나 오만불손한 히이라기 세이쥬로가 이렇게 볼품없게 땅을 기고 있다. 그 심경은 나락의 바닥인가? 아니면 초열, 규환일까. 분명 부글부글 끓고 있을 거라며 상상하면서 군침을 흘리는 무모의 모습은, 성질이 날만큼 추악했다. 그러니 이대로 즉각 그 머리를 비틀어버려도 좋았겠지만.
「그렇군……」
그러나 왜일까…… 세이쥬로는 지금 신노에 대해서 기가 막힐 뿐 그 이상은 느끼지 못했다. 놀랍게도 불쾌감 하나조차 가슴을 지나가지 않는다. 악마가 해대는 도발이 너무나 시시하게 보인 것이다. 아아, 이녀석은 어째서 이렇게 작은 걸까, 라고. 웅대한 자연을 보고 나서 진흙탕을 바라보는 듯한 심경이었다. 일일이 화낼 것도 없다는 신기한 여유가 마음 속에서 요동한다. 그 덕에 감상 역시 극적인 걸 품지는 않았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이지 덜떨어진 희극에 지나지 않았다.
「너무나 유치해서, 난 기가 막히고 있는 거겠지」
그래서 이렇게 기세가 꺾이고 있다. 상처를 치유할려고도 하지 않는다. 만사, 아무래도 좋다.
「다만」
「다만?」
딱 하나, 마음의 미혹일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변덕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신하고는 있지만. 짧게, 세이쥬로는 본심을 말했다.
「이상하게도, 나쁘진 않아」
솔직히 표현하자면 분명 그러한 것일 터다. 저건 멍청하고 어쩔 수 없는 범인이므로, 지금도 잘 모르겠다. 고조만이 세이쥬로를 이해했을 뿐인 일방통행이었다. 애당초 어째서, 왜 내가 그 남자를 알려고 했는지 조차, 이제와서는 어리석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말로, 쓸데없는 시간이었다. 그런고로 또 한번 체험할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활력의 태반을 그 바보같은 꼴에 빼앗긴 느낌이 든다. 그런데도 기묘한 상쾌감만은 이상하게 가슴에 남아 있었다. 만약 평소의 세이쥬로를 아는 사람이 지금의 그를 본다면…… 반드시 눈이 휘둥그레 했을 것이다. 그만큼 평상시에 그를 감싸고 있는 불길한 징조가 사그라들어 있었다. 그 변화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환영할 모습이지만, 그러나 여기 있는 것은 파계의 혼돈. 그런 정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흐응, 즉 만족했다는 걸까나? 이딴 촌극으로, 이딴 수준으로」
시시해. 그 한마디에 모든 감정이 한계까지 응축되어 있었다. 그것은 닿으면 작렬하는 핵폭탄같은 무서움으로, 조용하고 은밀하게 파멸의 고동을 새겨간다.
「그치만 그렇잖아, 지금의 넌 뭔가 김이 샌다고. 마음의 미혹이 생긴 정도로 그꼴이라면 나로서는 맥빠져. 그리고 그런 인간이 악마와 계약을 한걸까? 아니지, 아냐. 난 알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넌 훨씬 멋지게 사악해. 조금 흔들린 걸로 그런 모습을 보이지 말아줘.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고」
비틀면서 들여다보는 곤충같은 안구가 갑자기 빙글 위아래로 반전했다.
「이게 히이라기 세이쥬로의 절망(파라이조)이라고?」
크게 뜬 눈알 속에서 몇억의 파리가 손발을 비비고 있다. 세이쥬로가 작게 숨을 삼킬 정도로 신노는 진득하게 호소했다.
「그건……」
……그건 무엇이었을까. 얼마 안되는 망설임이 의미를 잡아내기 전에.
「그럴 일은 없지, 그치」
다음 순간 신노는 상냥하게 활짝 웃었다. 친애의 정을 가득 얼굴 앞에 노출하며, 자신은 아군이라고 어필하고 있다. 그러나, 웃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너무 불길하다. 경종의 음색이 울린다. 거기에 있는 것은 악마의 본질. 비록 얼마나 익살꾼처럼 보여도, 근본은 1초도 쉬지 않고 증오로 미쳐있는 존재의 아이덴티티.
「겁이 난 걸까나? 아니지, 히이라기 세이쥬로는 결코 그런 남자가 아냐. 그도 그럴게, 내 친구니까」
꺼림직한 선서는 두명을 연결하는 줄(저주)이었다. 혼백을 휘감는 악의의 실은 두명을 뗴어놓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노는 그에게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최고의 절망을 보여준다 했을 터다. 그 때문에 악마의 계약을 주고 받은 것이다. 이제와서 파기는 용서 못한다. 그리고, 다가오는 파멸을 애태우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세이쥬로를 조롱한다. 승성(蠅声)은 돌맹이를 깔보는 듯한 시선으로 그의 악의가 고작 그런거냐고 비웃고 있다.
「이 꼴로는 부족한 것도 정도가 있어. 악인의 최후라는 건 훨씬 구제할 길 없는 그런거잖아? 설마 두려워하는 건 아니겠지? 귀축외도의 세-지군이」
그 질문을 받고 잠깐이나마 요시야들의 그림자가 세이쥬로의 뇌리를 스쳐간다.
「사람의 마음은 물건이 아냐」
「당신은 너무 요구했어」
「난 너의 친구다」
이놈도 저놈도 진지하게 날 보고 있었다, 호소하고 있었다. 정의를, 도리를, 우정을 ──그리고.
「세이쥬로씨」
이 여자는, 아니.
「전 당신을──」
현실의 에리코는 아마도 계속 이럴거라고 이해하며.
「우문(愚問)」
그야말로 시시하다고, 악마의 속삭임을 긍정했다. 정말로 시시한 미혹을 품어버렸다. 대체 왜 내가 요시야나 고조의 말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거냐.
「취향이 형편없다고 신노. 절망(파라이조)의 사도를 자칭할거면 그만큼 상응하는 걸 내놔라. 그래, 내 말로가 고작 이정도일리 없어」
히이라기 세이쥬로는 배덕의 역십자. 따라서 최고의 종언을 맞이하는 걸 찬란한 명예로 여긴다. 노생이 되어, 아마카스를 죽이고, 한단의 왕으로서 모든 놈들을 공물로 하자. 그리고 다가오는 지옥의 처참함을 보면서 크게 폭소해주마.
만약이지만, 고조가 이곳에 있었다면 매우 한탄했을 것이다. 얼마나 시련을 맛봐도 다시 덤벼들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이쥬로는 사악하다. 그 결론만이 흔들리지 않는 진실인 것이다.
「후, 후후. 좋네에, 정신이 돌아왔구나」
하늘을 더럽히는 고독(蠱毒)의 화신이 친구의 복귀를 환영한다. ──결국 모든 것은 단순한 여담으로 끝났다. ──대세에 어떤 파문도 미치지 않는다. ──남자는 변함없는 귀축인 채로. 철두철미, 구원받지 못한다. ──절망은 찾아온다. 반드시, 반드시 온다. ──그것이 악마와 맺은 유일무이의 서약이니까.
「자, 기분을 바꾸고 제2안이다. 아들의 완성(제8층)을 기다리도록 하자. 그때야말로 세-지, 넌 염원의 노생이 될거야」
그 끝에서 히이라기 세이쥬로는 특급의 절망을 맛볼 것이다. 어쩌면 그가 사람으로서 구원받을지 모르는 최초이자 최후였던 이 기회를, 신노 아키카게는 분쇄한 것이다. 악마의 우정과 사랑으로. 넌 반드시, 무간을 초월하는 지옥의 바닥으로 승성의 이름을 걸고 데려간다. 놓치지 않아. 놓치지 않아. 그래, 너의 파멸은 나의 것.
「우후후후후후,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핫──!」
그렇게 작은 막간이 막을 내렸다. 한사람의 남자가 보인 사소한 마음의 미혹은 한단의 이슬로 사라진 것이었다.
세-지를 이기기 위해선 인간의 도리를 갖지 않는 괴물(쿠보)이거나 그의 악을 알면서도 유쾌하다, 존경스럽다(신노, 아마카스)는 악마, 마인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3의 천적은 이 싸움처럼 그를 한명의 인간으로서 대등하게 바라보면 부의 감정을 가지지 않고 세-지의 급단에 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걸 할 수 있는 자는 이 시점에서 머머리 아키라의 아버지 고조 뿐. 영원히 마나세 일가한테 고통받는 세-지... 만선진에서는 꽤 훈훈한 사이.
여튼 고조는 이제서야 세-지를 똑같은 인간으로서 대등하게 대해야 했다는 걸 깨닫고, 세-지는 처음으로 사람을 직접 공격하며 상대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감정을 약간이나마 품으며 고조를 도구가 아닌 생물로 인식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씬 중 하나. 원래 이렇게 인연이 있는 자끼리 주먹으로 치고 박으며 심정을 엿볼 수 있는 씬을 워낙 좋아해서요. 특히 여기서는 세-지가 흔들리는 모습이 재밌었죠. 결국 순수한 악에 처음으로 미혹을 보인 세-지는 바로 다음 턴에 신노가 다시 꼬드기면서 제정신(그러니까 순수한 악)을 차립니다. 그러나 사실 여기서 처음으로 보인 미혹이 숨어서 나타나지 않을 뿐 마음 속에서는 이미 '마음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 역시 8층 세-지전 이후 그의 결말에서.
「별로. 다시 느꼈을 뿐이야, 넌 굉장한 녀석이라고. 이런저런 병에 걸려서, 몸이 너덜너덜해지고,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상태로…… 쭉 참으면서 운명에 저항해왔지? 내가 당한 몇십배의 고통을 받고, 그야말로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그저 혼자서 몇
년이나, 그런 일 누구도 절대 할 수 없어. 마음이 중간에 꺾여버리고 반드시 사는 걸 포기할거야. 꿈에 들어가서 어떻게든
살아남자, 라는 터무니 없는 걸 생각해내는 것도 실행하는 것도, 범인인 나는 불가능해.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도 이후로도 너뿐. 히이라기 세이쥬로라는 강한 남자뿐이라고」
인상깊은 세-지 노력충찬양론. 역시 머머리들도 그 굉장함은 알긴 아나 봅니다! 여튼 굉장히 공감가는 대사이며 이런 세-지에 대한 비슷한 감상을 아마카스도 품고 있죠.
아 그리고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기원의 원천은 뇌내마약이 만든 환상 따위에 지나지 않을리 없다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만선진의 홍균이가 떠올라서 번역하면서 좀 웃겼습니다.
――지금부터는 여담이다. ――대세에 어떤 파문도 미치지 않는다. ――남자는 변함없는 귀축인 채로. 철두철미, 구원 받지 못한다. ――절망은 찾아온다. 반드시, 반드시 온다. ――그것이 악마와 맺은 유일무이의 서약이니까. 머지 않아 통곡하면서 그는 분사(憤死)할 것이다.
「따라서, 한번 더다」
싸움의 전말을 보고 있던 남자는 권속의 생명을 되감는다. 그도 그럴게, 이곳은 히이라기의 성을 갖는 자가 창조한 세계. 아들이 하나 큰 결착을 냈다. 그렇다면 아버지 역시 어떤 업과 마주봐야 한다. 아마카스 마사히코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찌된 조화인지, 사람이 사라진 경내에 산산조각이 났을 터인 사람의 그림자가 다시 생겨난다. 요시야는 모르겠지만 노생이 살아있는 한 권속은 실질상 불사신이다. 꿈 속에서는 진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 아마카스의 한단과 연결되고 있는 세이쥬로도 그 법칙이 적용된다. 따라서 수단 그 자체는 이상할 것 없고, 중요한 건 이곳에서 재기 시키려는 의도다. 종막 후에 패자를 일부러 무대에 서게 하는 이유따위 그에게 한가지 밖에 없다. 아마카스는 인간찬가를 노래하는 마인. 범인의 기준에서 현저히 일탈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사랑과 용기의 신봉자다. 지금 그는 전진관의 분투에 심히 매료되었다. 그렇기에 세이쥬로에게도 고난을 부여한다. 너의 용기, 너의 사랑, 이곳에 낙원을 보여주게 내 친구여. 인류 최초의 몽계공략자이며, 아마도 최강의 노생인 남자가 꿈을 고한다.
「그럼 시작해볼까 세-지. 지금부터가 네게 찾아오는 진짜 고난이다」
아들의 벽이 아버지라면, 세이쥬로에게 있어서 벽은 무엇인가. 찾아오는 또 하나의 극을 앞에 두고 아마카스 마사히코는 성자같은 자비를 품으며 미소짓는다.
그리고――
「―――흥」
모래시계가 되감기듯이 히이라기 세이쥬로는 쓰루가오카하치만궁에서 재생됐다.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분한 듯 콧소리를 낸다. 그 태도에서 패배했다는 사실 이상으로 또 다른 초조함을 엿볼 수 있었다.
「수고를 들게 하는군」
그게 귀찮아서 어쩔 수가 없다, 라는 듯이 혀를 찬다. 여전히 그 심정은 변함없다. 요시아의 노생의 힘을 강탈한다, 그것만을 병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그러니 이번 결과도 그에게 있어서 아주 조금 예정이 어긋난 정도. 쉽게 뺏을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 뿐이며, 그저 조금 수고를 들이는 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패배에 대한 기특한 반성심 따위, 여전히 티끝만큼도 가지지 않는다. 아니 애당초 세이쥬로에게 있어 노생이란 어느 시기에 되는가라는 인식 뿐이다. 그에 관해서 승리도 패배도 없고, 반드시 빼앗을 수 있는 것을 조기에 쉽게 손에 넣을지, 조금 애를 써서 후기에 얻을지 하는 차이 정도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머리 속에서는 이미 입수했다는 확신으로 움직이고 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김칫국부터 마시는 사고지만, 그걸 해내왔던 것이 히이라기 세이쥬로라는 남자다. 그러니 그 의식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불변이다. 사랑에 졌다. 정에 졌다. 아아 그래서? 최후에 쓸데없는 발악이 될 뿐. 요시야를 역십자에 매다는 것은 한단 공략에서 조금 늦어졌을 뿐이다. 단지 그정도의 일이다. 자신은 어떤 실패도 하지 않았다, 허풍도 현실도피도 아니고 당연히 믿고 있다. 따라서 그것이 이 남자의 심지다. 사람으로서 중요한 것이 모두 결핍되어 있다. 병에 침식되고 있든 없든, 근성이 항상 외도 중의 외도. 히이라기 세이쥬로는 사악하다. 내력이 파탄하고 있지만 정의로는 그에게 변화를 줄 수 없다. 그리고 그 질긴 모습도 거기에 근거가 있기 때문이었다.
「저건 아직 날 원망하고 있다」
동료 덕에 승리했다고 하면 듣기에는 좋지만, 다시 말하면 자력으로 날 공략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요시야는 내 급단에 다시 걸린다. 그때까지 잠깐이라도 즐기는 게 좋을 거다. ――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고가 평범한 발소리에 중단됐다.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뭐지?」
의심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그도 그럴게 이미 제5층에는 아무도 없다. 요시야는 떠났다. 이 계층을 답파했다. 그러니 돌아올 이유도 없고 그런 구조로 설정한 기억도 없다. 한단의 기초를 만든 세이쥬로이므로 거기에 관해 누구보다도 숙지하고 있다. 신노나 아마카스처럼 마를 농축한 기색도 아니라면, 대체 누가 와있는가. 그런 의문은 의외의 내방자의 모습에 의해 풀렸다. 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모습이, 지금, 내 앞에 서있다――
조용히, 바람이 두명의 사이를 흘러간다. 몇초의 침묵은 영원처럼 투명했다. 이렇게 마주봤던 적은 몇 번이나 있었는데도 마치 첫대면처럼 양쪽 모두 말없이 멈춰서있다. 그 짧은 시간에 각자 무엇을 느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세이쥬로는 곧바로 팽팽한 공기를 삐뚤게 했다. 난처한 듯 미간을 찌푸린다.
「……고조, 네놈 왜 여기에 있나」
「너랑 마찬가지야. 요시야군이 살아있는 한 난 죽지 않아. 그쪽도 권속이지, 그럼 이치는 충분히 알거다」
「그런 걸 물은게 아니다」
이 손으로 죽이고, 그리고 살아난 이치 따위 물을 필요도 없이 파악하고 있다. 왜냐하면 방금 전 자신도 마찬가지로 이곳에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알 수 없는 것은 권속으로서 특성같은 게 아니라, 왜 이런 시기에 굳이 왔느냐는 것이다.
「이미 제5층은 답파됐다. 나온 결말은 뒤집을 수도 없고, 네게 그럴 이유도 없어. 그 두명에게 가세하러 왔나? 얼간이가, 상황도 보지 못할 줄은. 모처럼이니 가르쳐주지. 이 계층은 이미 역할을 마친 후다」
시련도, 장해도, 아무 것도 없다. 여기서의 행동은 만사, 쓸모없다.
「이해했으면 사라져라, 인형자식아. 남은 찌꺼기끼리, 에리코와 즐기고 있는게 좋을거다」
「아니, 아직 중요한 일이 남아 있어」
찔러오는 매도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고조는 한걸음 내디딘다. 아키라와 제법 닮은 의(義)의 결정같은 시선으로 세이쥬로를 직시하고 있다.
「몇번이나 말하게 하지 마. 난 널 내버려 둘 수 없어. 하다 남긴 일이 있으니까, 이렇게 몇번이나 창피를 당하고 있는거다」
「…………」
뭐지 이녀석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게다가 자신에겐 마음이 있다는 듯한 말투다. 우스꽝스러움을 넘어서 이젠 기가 막힌다.
「정말 주제넘는군. 시시한 위장 하지마라, 고조. 네 정은 내가 손에 넣었다」
「바보자식…… 넌 아직도 모르는거냐? 방금 전, 그게 원인이 돼서 요시야군에게 졌잖냐. 그 아이들의 강함을 보고도 정말로 아무거도 느끼지 못한거냐」
슬픔――따위 없을텐데, 그처럼 낙담한 표정을 한다. 점점 더 영문을 모른다. 외부에서 누군가 조작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정교한 가짜라는 가능성도 나왔다. 근데 그런것치고는 이 인형, 꽤나 진짜같다…… 세이쥬로는 그런 사고밖에 하지 못한다. 그게 굉장히 외로운 것이라고 애석해하는 고조를 여전히 눈치채지 못한 채다. 그래서 자신이 여기에 온 것은 실수가 아니었다라고 고조는 말한다. 진검으로, 그리고 참회하듯이.
「그렇네, 실은 알고 있었어. 넌 훨씬 전부터 그런 녀석이라는 정도는. 그래서――」
주먹을 쥐고, 힘을 넣어, 거구에 상응하는 근육이 부풀어올랐다. 그 용모랑 달리 언제나 싸움하고 인연이 없었던 남자가, 지금――
「그래서 난, 그걸 가르쳐주러 온거다!」
외치면서 일직선으로 뛰쳐나온다. 그리고 간신히 세이쥬로는, 조금이나마 상대에 대해 이해했다. 밉다, 화난다. 뭐야, 평소의 그거라며.
「이제 됐어, 닥쳐라」
보고 있기에 질리는 반응을 앞에 두고 나온 것은 성가시다는 한마디였다. 이런 촌극은 이제 끝이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없다.
「이번엔 고기 한조각 남기지 않을거다. 그러면 시끄러운 잡음도 멈추겠지」
생각해보면 빼앗을만큼 빼앗고 적당히 유기해서 귀찮은 일이 된거다. 잡초는 송두리 뽑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이 미친다. 날 미워하고, 날 알아라. 그 폭력은 닿지 않는다. 세이쥬로를 쓰러뜨릴 수 있는 건 인간이 아닌 악마의 무리로 한정된다. 급단, 현상―― 제물의 십자가가 다시 악몽의 재래를 알린다.
「――크어억!?」
그래, 알릴 터였지만, 그러나.
「커, 헉…… 아――」
그러나――
「오오오오오옷――!」
그러나, 왜냐 어째서 ――역십자가 나타나지 않지. 주먹이 꽂힌다, 몇 번이나.
마치 농담인 것처럼 고조는 급단의 합의에서 벗어나 있다. 주먹이 턱을 뒤흔들고, 시야의 구석에서 별이 보인다. 비틀거리는 신체에 계속해서 두 대. 육체에 둔한 아픔이 퍼지고 무릎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현상에 일찍이 없었을 정도로 세이쥬로는 곤혹한다. 착각할리도 없이 이건 폭력…… 적의다. 정의의 분노나 세상을 지키는 사명감이라 해도 그것은 악감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적이라는 존재에게 향하는 공격의 의지로 가득 차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모든 선인이 재밌을 정도로 걸렸었다. 그럴텐데 그 전제가 지금 산산조각으로 분쇄되어 있다. 게다가 그것도, 하필이면 이 남자에게. 마나세 고조. 아둔한 남자. 자기 욕망에 소극적이고, 그 대신 타인에게 베푸는 것 외에 할 수 없는 굼벵이. 별 꿈도 갖고 있지 않는 그저 무능. 그리고 지금은 그 얼마 안되는 가치마저 남지 않은 빈껍데기일 터다, 그럴 터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냐!
「――크, 윽…… 바보같은!」
역십자가 발동되지 않는다. 그것은 즉, 이녀석은 날 미워하지 않는다는 거다. 공격을 가하고 있는 이상 그럴 수는 없는데. 그 현상에 미혹되어 이해가 가지 않는 세이쥬로랑은 대칭적으로 고조의 눈동자는 맑았다. 아아, 그치만 당연한거잖아, 라고.
「그건 말야, 세-지――」
이렇게 때리는 거도, 그에게 있어서 히이라기 세이쥬로가 밉기 때문은 절대 아니고.
「내가, 네 친구이기 때문이다!」
의연한 대답과 함께 뜨거운 주먹이 꽂힌다. 원한따위 어디에도 없다. 그래, 어디에도 없다. 왜냐하면 소중하니까.
「넌 분명히 내 정이나 마음을 모두 빼앗았을지 몰라. 그렇지, 분명히 난 한번 텅 비어버렸어. 근데 말야, 그게 어쨌다고. 요시야군이 보여줬잖냐」
기억도 마음도 빼앗긴 그가 일어설 수 있었던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누구든 자연스레 배우는, 감정이라 부르는 것의 본질이다.
「마음은 물건이 아니라고. 얼마든지 솟아나는 거다――!」
때려 박는 언령은 오로지 성실하게 세이쥬로를 바로 관철했다. 그건 인간으로서 아주 당연한 진실이다. 정신은 샘이나 마찬가지, 어쩔 때는 이치나 이론이라는 척도를 가볍게 능가하는 인류가 가긴 꿈 그 자체다. 애당초 한단이라는 보편무의식 그 자체가 집성된 마음의 바다에서 만들어지는 영역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기원의 원천. 그것은 단순한 신경전달작용이나 뇌내마약이 만든 환상 따위에 지나지 않을리 없다. 말할 필요도 없는거다, 어쩔 수가 없는. 그러므로 세이쥬로라는 남자는 지금 생각지도 못한 천적과 마침내 맞서게 된 것이다. 고조는, 지금은 이 친구에 대해 증오를 갖지 않는다. 하물며 중병환자가 딱하다는 생각마저, 마음 속에 한조각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녀석과 자신은 대등하니까. 그리고 귀축외도라 해도 함께 보낸 시간은 거짓말이 아니니까. 고조는 받아들인 것이다. 그의 업을 직시하고, 거기다 부정도 하지 않는다. 얼마나 죄를 지었다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여, 세이쥬로에 대해 순수한 친구의 정을 향하고 있다. 그 주먹에 담긴 것은 뜨겁게 불타는 우정의 불꽃, 역십자가 발동할리가 없다. 히이라기 세이쥬로를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은 애당초 사람의 도리를 모르는 인외(人外). 혹은 그를 유쾌하다 생각하는 악마의 무리에 한정된다. 그렇게 생각했던 사실은 그러나, 제3천적에 의해 박살났다. 무시무시한 사악을 이기는 것은 언제나 사랑과 정의. 그를 사랑하고, 그 구제할 길 없는 본성마저 긍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성자가, 병들어버린 남자를 꿰뚫는다. 그리고 슬프게도, 악당은 그 깨끗함을 이해할 수 없다. 그저 불쾌하고, 귀찮고, 성가셔서 어쩔 수 없다. 그렇기에――
「알지도 못할 개소리를, 떠들지마……!」
단지 우직하게 상대를 되받아칠 수 밖에 없었다. 형용할 수 없는 가슴의 쑤심…… 그걸 뿌리치듯이 고조의 안면을 강타한다.
「―――――」
그 순간, 손에 전해진 감촉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그건 처음으로 사람을 때린 감상이었을 거다. 세이쥬로는 사실, 이 때 타인이라는 걸 처음으로 직접 공격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인간을 공격해왔다. 빼앗고, 능멸하고, 버려왔다. 그에게 있어 타인이란 애당초 먼지이며, 자신에게 공물을 헌상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세이쥬로가 휘두른 폭력, 찬탈, 외도 등등, 거기엔 필연적으로 빠진 것이 있다.
즉, 그것은 “방위심”―― 눈앞의 존재에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그래서 없애려하는 원시적인 감정. 공포. 지금 세이쥬로는 몸을 괴롭히는 병마 이외에 처음으로 공포를 품고 있다. 고조를 때리는 일 자체는 과거에 몇 번이나 했었지만 이 아둔한 남자에게 우려를 품은 것은 이 때가 정말로 처음. 방해가 되는 장애물이나 성가신 몽매를 시야에서 없애왔던 지금까지와는 분명히 다르다. 무서운거다. 모르겠다. 다가오지 마, 내게 상관하지 마라며, 감정 그대로 무모하게 날린 주먹은 그렇기에 서투르고, 이어지는 일격도 예비동작을 알 수 있는 변변찮은 것이었다. 한마디로, 꼴사납다. 히이라기 세이쥬로라는 어둠의 천재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곳에는 살아있는 감정이 농축되어 있다. 네놈이 왜, 가차없이 날 때리고 있느냐고. 그게 너무나 용서가 안돼서, 그러니 굴복시키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은 물건, 내 물건이다. 그럴텐데 이제와서 네놈이 거역하지마. 그 일심으로 이런 비효율적인 반격을 왜인지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이 장소에서 세이쥬로가 제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초조한 채로 아이처럼 익숙치 않은 싸움을 계속하고 만다.
「큭…… 모르는 놈은, 그쪽일텐데!」
반격으로 전환하는 고조의 목소리가, 눈물이 흐를만큼 기쁘게 들리는 게 더욱 아니꼬왔다. 어쩌면 고막까지 이미 망가졌을지도 모르지만. 히이라기 세이쥬로의 패배따위 있어서는 안된다. 반드시 제 분수를 알려주면 분노로 불타오를 것이다.
치고 박는다 오로지. 책략도 승산도 여분은 일절 없이. 고집을 세우며 양보할 수 없는 것을 서로 부딪히는, 두명의 남자. 환자라든가, 빈 껍데기라든가, 우열의 차이는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똑같은 한사람과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상대에게 주먹으로 마음을 전한다. 길고 긴 시간의 끝에 그들은 지금, 겨우 대등한 관계를 구축했다.
「애당초 세-지, 옛날부터 난 너가 마음에 안 들었어」
손에서 피를 흘리면서, 그런데도 어딘가 기쁜 듯이 고조는 추억의 이야기를 한다. 아아, 시끄러워. 닥쳐라 쓰레기가. 네놈같은 왜소한 세계관으로 히이라기 세이쥬로를 들먹이는 게 얼마나 모독적인 일인지 모르는건가.
「에리코씨에게 하는 짓, 주변에게 하는 신랄한 태도. 자신만만인 건 좋지만, 감사의 말을 한번도 한 적 없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 얼마나 삐뚤어져 있는거냐 넌. 나나 에리코씨가 없어지면, 네놈은 외톨이가 된다고!」
「그게, 어쨌다고――!」
아무래도 좋아. 쓸모없는 일따위. 이제 그만 쓰러지라고 팔을 휘두른다.
「어중이떠중이의 똥찌꺼기를, 어째서 내가, 일일이 신경쓰지 않으면 안되는거냐! 네놈들이야말로 누구 허락을 받고 내 주변을 돌아다니는거냐. 따라오라고 명령한 적 따위, 한번도 말한 기억이 없어!」
그럴텐데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이 남자는 언제나 이렇다. 보통의 일반론을 당연히 진리라고 말한다. 그건 내게만은 맞지 않는다고 대체 언제나 돼야 눈치채는 건가. 어쩌면 눈치채고서도 달려드는거라면 약도 없다. 이자식은 이미 죽어도 낫지 않는 바보일거다. 그러니 여기서 죽여주마. 그리고 두 번 다시 내 앞에 서지 못하게 한다.
「필요없는 일을, 언제나 기를 써서 전하려 하나」
그래, 그러니 방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든 이유를 다 파악하지 못할 만큼.
「네놈 정도가, 내게 뭘 가르치려 드는거냐. 도구라면 상응하는 태도를 해라. 날 귀찮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는게 도리일터다……!」
이자식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끈질기다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뭣보다, 뭐냐 네놈은. 대체 뭐냐, 이 상황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밉겠지? 그럼 왜, 대체 어째서 내 꿈에 걸려들지 않는거냐! 네 정은 적의를 품지 않고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냐!」
「아아, 열받고 말고! 하지만 그건 너에 대해서가 아냐. 이렇게 될 때까지 결착을 내지 못했던 나 자신이…… 열받아서 어쩔 수가 없는거다! 그래서 널 막는 건 내 역할이다. 누구에게도 넘겨줄 수 없어. 너가 소중하니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거다. 간단한 일 아니냐고」
간단? 어디가, 이제 도저히 이해불능이다. 다른 차원의 말이라도 하고 있는지 세이쥬로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들어오는 일격일격에 담긴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심장을 스쳐가는 그 자극을 지금도 파악하지 못하고 곤혹하고 있다.
히이라기 세이쥬로는 어찌할 수 없는 남자다. 악 그자체의 인간이다. 구제할 길 없는 근성을 갖추고 있고, 방치해두면 해악을 몰고 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걸 받아들일지 말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걸 인정하기까지 고조는 이렇게나 시간이 걸려버렸다. 그가 깊이 한탄한다면 그런 일에 대해서일 것이다. 고조의 뺨에 한줄기, 뜨거운 피가 섞인 방울이 흘러내렸다.
「미안했다, 세-지…… 내가 이렇게 도움이 되지 않아서. 친구인데도 네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없어서 여기까지 우회해버렸어……」
「뭔, 개소리야」
「별로. 다시 느꼈을 뿐이야, 넌 굉장한 녀석이라고. 이런저런 병에 걸려서, 몸이 너덜너덜해지고,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상태로…… 쭉 참으면서 운명에 저항해왔지? 내가 당한 몇십배의 고통을 받고, 그야말로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그저 혼자서 몇 년이나, 그런 일 누구도 절대 할 수 없어. 마음이 중간에 꺾여버리고 반드시 사는 걸 포기할거야. 꿈에 들어가서 어떻게든 살아남자, 라는 터무니 없는 걸 생각해내는 것도 실행하는 것도, 범인인 나는 불가능해.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도 이후로도 너뿐. 히이라기 세이쥬로라는 강한 남자뿐이라고」
그 시선에 꿰뚫어진 세이쥬로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었다. 어째서인지 목에서 말이 나올 거 같지 않다. 언제나처럼 당연하다고 단정하면 된다. 네놈에게는 그럴거다라고, 멸소하면 그걸로 된다. 바보처럼 말없이 굳을 필요따위 없다. 고조의 머리가 너무나 경사스러워서 반론마저 까먹은거다. 어떤 공격보다도 저 말이 독으로 느껴졌다. 그런, 혼란스러운 세이쥬로를 보고, 고조의 입끝이 살짝 올라간다. 피와 흙으로 더러워지면서도 부드러운 미소는 용감했다. 거기엔 부의 감정따위 일절도 없이――
「그래서 난 널 존경한다. 그래서 난 널 깔보지 않아. 같은 땅을 걷는다, 똑같은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소중한, 내 자랑의 친구다!」
그 때문에 자신은 히이라기 세이쥬로를 내버려 둘 수 없는 거라고. 지금 이 순간, 흘러넘치는 우정은 틀림없이 한단의 꿈에 있어서도 유달리 빛나는 진실이었다.
「――――, 닥쳐라!」
자신에게 던진 고조의 말. 그게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생각이라고, 과연 세이쥬로도 이해했다. 순간 나온 목소리는 여유를 잃고 궁지에 몰린 듯하게도 들린다.
「기분 더러워, 성가시니까 들러붙지마! 어디까지 불쾌한…… 마나세 고조, 너같은 멍청한 남자를 난 본 적 없어. 말했을 터다, 네놈들은 내 도구라고. 타인이라는 주춧돌 주제에, 의미도 모를 소리를 잘도. 짐작도 안가는 감정을 내게 향하지 마, 그런 건 네놈의 마음에 만든 적당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아! 난 나다! 있는 그대로 귀축이 됐다! 그 순수함을 이제 와서 건들게 할까보냐아아――!」
「어쨌든 좋지 않냐, 내가 멋대로 그렇게 생각할 뿐이니까. 몰인정하게 당하는 거도 익숙해졌다고. 이제 와서 이런 걸로 널 버리지 않아」
뭣하면 지옥까지 함께 해도 괜찮아, 그렇게 밝게 말하는 고조. 분명 세이쥬로를 상대하기엔 염라나 귀신조차 애먹을테니까. 이제 두 번 다시, 이 마음을 잃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래서 이게, 나 나름의 네 도움이 되는 일이다. 세-지가 진정한 의미로 살아갔으면 해. 바라는 건 그 뿐이다」
아무렴 살아서 악귀나찰이 될 필요는 없다. 죽고난 다음에도 충분해, 그 전에 햇빛 아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거라고 말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빛나려고 노력하는 것. 그걸 모를 세이쥬로가 아니니까.
「――크, 후후, 하하하하하. 잠꼬대는」
그러나 세이쥬로는 비웃는다. 어처구니 없다고. 멍청이나 할 말을 잘도 한다.
「살아가는 것에 거짓이나 진실이 있을리 있겠나……」
「말했잖아―― 그걸 가르쳐 주겠다라고!」
정면에서 크로스카운터. 서로 턱이 흔들린다. 부러진 이가 피토와 함께 흩날리지만, 그래도 두 명은 싸움을 그만두려하지 않는다.
「크으, 으윽……!」
대체 몇 번을 때렸는지…… 그리고, 몇 번을 맞았는지.
「――커헉, 치잇」
세는 것도 어리석을 정도로 주먹과 마음을 충돌시켰다. 그들의 싸움은 시종일관, 우정과 거절의 충돌이었다. 절대적 독존을 조금이라도 벗겨주려는 듯이. 그리고 한쪽은, 거기에 지지 않도록 날뛰며 대응하고 있다. 결국은 진심으로, 본심으로, 꾸밈없는 마음으로 맞서고 있다. 세이쥬로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장식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신으로 대항하고 있다.
왜냐면, 이 악랄한 남자는 한번도 자신을 속이지 않았으니까. 다만 타인이라는 것들이, 언제나 그에 대해 착각하는 인생이었다. 무서워한 나머지 직시하지 못하고, 항상 세이쥬로의 본질을 잘못 인식한다. 혹은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됐을 거라고, 제멋대로인 소망을 강요한다. 그리고 파멸을 당하고, 그제서야 그가 구제할 길 없는 인간이라고 이해하고 절망한다. 따라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고조는 쓰러지지 않아, 버리지 않아, 악마라고 알면서도 믿어준다. 자신의 깊은 어둠을 접하고, 깊게 상처 입고 그러면서도 더욱 쫓아오려는 존재 자체가, 세이쥬로에겐 미지였다. 마치 도리가 다른 이생물. 이녀석에 대해 알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일 수 없다. 향후에 반드시 방해가 된다. 그게 불쾌, 불쾌하고 불쾌해서 어쩔 수 없으니까―― 세이쥬로는 바란다. 마나세 고조라는 인간이 어떤 생물인지 가르쳐달라고. 타인에 대해 마음 속으로부터 경계했다. 그것은 처음으로, 상대의 마음을 무겁게 파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의식적으로 내린 판단을 본인은 눈치채지 못한다.
「하하, 하하하하하……」
그래, 언제나 눈치채는 쪽은 세이쥬로가 아니고 고조 쪽이었다. 정말 뒤치다꺼리에 애가 간다고, 그는 친구에게 이를 악무는 듯한 쓴웃음을 짓는다.
「꿈도 버릴만한 게 아니다, 인가. 아아, 확실히 그렇네. 현실에서 이런 일은 할 수 없었어. 오랜 사이인데도, 서로 부딪히는 것도 하지 못해서…… 그런데 어때. 우리들은 처음으로 이렇게 서로 치고 박고 있다. 이봐 세-지, 어떤 기분이냐? 난 기뻐서 참을 수 없어」
적의든 경계심이든 알까보냐라고 고조는 생각하고 있다. 받은 주먹에서 상대의 마음이 강하고 뜨겁게 전해지니까. 넌 뭐하는 놈이냐라는 질문이, 그저 기쁘고 기뻐서 어쩔 수 없다. 처음으로 자신을 한사람의 남자로서 히이라기 세이쥬로가 인정하고 있다.
「그래 더다. 진심으로 와라. 얼마든지 받아줄게. 이 순간에 이르러, 난 진정한 너와 만난거다――!」
「걸리적거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따라서 세이쥬로는 포효한다. 뭐 하나도 알 수 없으니까, 다가오지마. 꺼져버려. 네 모든 것을 이번에야말로 다 빼앗은 다음에――
「시시한 넋두리를, 나한테 쫑알대지마아아!」
결별을 바라면서 전력을 담은 일격을 가했다. 혼신의 타격이 작렬했지만, 고조는 쓰러지지 않았다. 당연해. 이녀석은 어쩔 도리 없이 머리회전이 나쁘다. 이정도로 포기할 남자가 아니다. 반드시 다시, 건방지게 내게 이를 드러낼 것이다.
그 예측은 정확, 곧바로 녀석은 다시 돌격해온다. 눈에 담긴 투지는 흐려지지 않고 세차게 불타오르고 있다.
「분수도 모르는 놈이」
이길 작정인가, 웃기는군. 급단을 봉인당한 정도로 내게 네게 뒤떨어질 터냐. 좋아. 어느쪽이 위인지 이걸로 알게 해주마――! 그리고――
「고오조오오오――――!!」
「세에지이이이――――!!」
격돌하는 소리가, 쓰루가오카하치만궁에 몇 번이나 메아리쳤다. 이정도의 열과 아픔은 처음이라고…… 드디어 아주 조금이라도, 한명의 남자에게 깨닫게 해주면서. 달빛이 비추는 아래, 두명의 싸움은 언제까지고 계속된다. 함께 보낸 모든 시간이, 여기서 하나의 결과를 만들 것처럼. 쭉, 쭉――
上하고 下 사이에 간극이 있습니다. 설마 이 번역질을 클리어 안한 분이 보지는 않을테니...
아키라가 아마 유일하게 활약하는 파트. 사실 팔명진 히로인들이 제대로 활약하는 때는 각 루트 최종전 뿐이지만요. 마사다 왈 히로인들이 있어야 각 루트 최종보스를 이길 수 있다고 했으니 그말대로 되긴 했습니다. 이 파트 묘사에서 나오듯이 아키라의 급단은 조건이나 성능 자체가 그렇게 놀라운 건 아닙니다. 다만 세-지에게 완벽한 상성을 자랑하는 기술이라. 좀 다르지만 좀비몹한테 치유마법을 거는 느낌이랑 비슷하달까요! 여튼 작중에서 노생들이나 쿠보 등을 제외하면 분명 최강급이긴 하지만 묘하게 상성이 안맞아서 이래저래 고통받는 세-지. 이 뒤에 이어서 또 다시 마나세 일가한테 괴롭힘 당합니다!
노생이란 도구에 대한 집념을 작중 내내 광기를 품으며 보여준 세-지가 딱 한번 다른 도구에 눈을 돌리고 그게 패배의 결정적 이유가 되죠. 만선진에서 헤이세이(현대 버전) 세-지는 아키라(이 시점에서는 할망구)에 대해 '이상하게도 이길 수 없는 신기한 사람'이라고 묘사하는데 이 싸움에서의 인연을 떠올려보면 참 훈훈하기도. 여기서 아키라가 바라는 정당한 히이라기 가족의 모습이 만선진에서 구현됩니다.
<공기가 맛있어!>, <동정했구나, 나를――>는 세-지의 히트대사들. 가끔 샤워하면서 혼자 외쳐보면 재밌어요 이거. <동정했구나, 나를――>은 세-지의 키메세리후란 느낌. 판매용 세-지 셔츠엔 아예 공기가 맛있어란 단어가 박혀 나오죠. 디자인을 좀만 더 센스 있게 만들었다면 샀을지도... 어쨌든 이 대사들은 만선진의 역십자 난텐이 그대로 오마쥬.
처음 플레이 할 때 세-지가 최후의 발악으로 꺼내드는 수수께끼의 왼팔이 요시야의 무엇이 아닐까 하고 추측했습니다. 하지만 수기를 봐도 알 수 있으며 클리어 후에는 쿠라나의 왼팔임이 확실해지죠. 그런데 문제는 수기를 보건데 쿠라나의 왼팔을 강탈한 시점이 요시야들이 한단에 진입하기 전으로 추측되며, 그렇다면 이 시점까지의 쿠라나의 왼팔은 강탈당한 셈인데도 공통루트의 신노 대 쿠라나 전에서 쿠라나가 왼팔을 이용한 급단발동을 노리는 듯한 묘사는 무엇인가 입니다. 오류인건지 내가 이해 못한건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요시야는 이 싸움에서 마지막까지 세-지의 혈통을 받지 않았다며 그를 아버지라 인정하지 않습니다. 8층 세-지전의 핵심.
「기다렸다 이 순간을!」
죽을 병과 결별, 초월자로서의 신생은 이제 곧. 자, 노래해라 나의 구세주―― 지금이야말로 히이라기 세이쥬로는 재탄생한다!
「안돼, 냅둘까보냐……앗」
그런 결말은 아키라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한발자국 떨어진 위치에서 되는대로 희롱당하는 요시야를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녀의 눈으로도 잘 안다. 지금 그는 모든걸 잃어버리면서 절망과 고통 속에서 필사적으로 계속 싸우고 있다. 자신이 아주 좋아했던 부분이 빠르게 사라져가고 그 대신에 죽을 병으로 차례차례 바뀐다. 솔직히 정말 보고있을 수 없다. 저래가지고는 마치 병마를 담는 고기그릇일 뿐 아닌가. 비참한 모습인데도 그것을 본인이 제대로 감지할 수 없어서 더욱 가슴이 매인다. 사고능력마저 이제 한조각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이지적인 눈동자가 진흙처럼 탁해져간다…… 무저항의 모습은 마치 인형같다, 외도의 교환작업을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계속 받고 있다. 역십자에 매달려있는 부러워해진 결과가 눈에 들어왔다.
「모두 이만큼이나 빼앗겼어……」
그 평온한 나날의 그림자에서 고조와 에리코는 대체 어느만큼의 파멸을 새겨져왔던 것일까. 괴로움을 알아주는 것은 이제 할 수 없지만, 요시야마저 저 남자에게 빼앗길 수는 없다. 반드시 지킨다. 그걸 할 수 있는 건 단 한명, 자신뿐. 꿈을 가속해라 마나세 아키라―― 지금이 진정한 중대국면이다!
「저기, 들리니…… 요시야」
세이쥬로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아.
「걱정같은 거 전혀 안해도 좋으니까」
소중한 건 그. 달래주고 싶어, 안아주고 싶어. 가슴에 머무는 이 따스함을 한번 더.
「너에 대해서라면 난 뭐든 알고 있어. 아버지에 대해, 에리코씨에 대해. 아유미에 하루미츠, 린코나 미즈키나 나루타키에, 천신관부터 전진관까지. 쭉 함께 자랐고 같은 경치를 봐왔으니까. 전부를 빼앗기고, 모두를 잊어버려도…… 그때마다 추억을 덮어줄 수 있어. 난 결코 잊지 않아. 왜냐하면, 요시야를 정말 좋아하니까」
얼마나 나눠준다 하여도 사라질 수 있을 감정이 아니다. 내 마음은 물건이 아냐. 그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맹세했었지. 어떤 아픔도 반드시 치료해준다고! 흐아아아아아아――――앗!!」
불굴의 정신이 아키라의 꿈을 한층 더 예리하게 만든다. 진의 기도[각주:1]가 다시 요시야 속에서 가득 차도록. 바라는 건 단지 그것뿐, 따라서 하나의 감정에 건 힘이 일찍이 없었던 기적을 일으킨다. 번쩍이는 빛이 역재생처럼 결손부위를 덮어가며 지금까지 불가침이었던 병에도 서서히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사랑이 그대로 형태로 나타난 것 같은 광경은, 확실히 자애의 분류다. 보는 사람을 매료하는 빛의 소용돌이, 성스러운 입자가 상처투성이의 용사를 포옹한다.
「――부러워」
그리고, 그런 걸 보고도 이 남자의 좀이 쑤시지 않을리 없고. 번뜩이는 기아의 시선이 치유의 꿈으로 휘감겼다.
「너의 힘이 처음부터 내게 있었더라면」
세이쥬로는 아마카스의 권속이 되어 마인화 했지만, 그걸로 병을 완전히 지워낸 것은 아니다. 다만 지극히 튼튼한 생명체로 변모했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업병을 짊어진 채로 생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에도 세이쥬로는 변함없이 여전히 병들고 있다. 그가 이 고통에서 해방된 것은 생애 단 한번도 없다. 그렇기에 아키라의 꿈을 선망한다. 자신에게 저러한 게 있었더라면 아주 편했을 거라고.
「시끄러! 나라고 해서!」
그리고, 그 망집을 피부로 느낀 아키라는 웃기지 말라고 생각한다. 후안무치가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처음부터, 너가 이런 남자가 아니었다면……!」
얼마든지 치료해 줄 수 있었고, 그 회복을 바랐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이만큼이나 살고싶다고 이 남자는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까. 세이쥬로의 어둠을 이해하고, 생존에 대한 엄청난 갈망을 알고, 그 마음은 더 깊고 강해졌다. 아키라도 지금 좋아서 싸우는 게 아니다. 요시야나 천신관의 동료들도 적을 쓰러뜨리고 싶어서 이렇게 용사극에 몸을 던지고 있을 작정은 아니다. 악당 이외에는 도와달라고 요구한다면 기꺼이 손을 뻗어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양식도 갖고 있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히이라기 세이쥬로는 어째서 뼈속까지 이렇게 무서운 남자인걸까라고. 만약 이 귀축외도가 그저 당연한 요시야의 아버지였다면, 이제 와서 슬플 정도로 생각해버린다.
그건 있을 수 없는 만약의 이야기. 우리들, 소꿉친구들이 떠들고 있는 걸 언제나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던 고조와 에리코. 그 풍경에 히이라기 세이쥬로 존재했어도 좋았을 거다. 그가 정말 조금이라도 정당하다면…… 분명 편벽한 인텔리 아버지로서 내 아버지나 아들인 요시야와 매일 말다툼을 하고 있었겠지. 말이 심하잖아. 시끄럽다 아둔한 놈. 그런 말투는 너무하잖냐 세-지……라고 뻔한 다툼을 시작하는 세명 사이에서 그저 허둥지둥하는 에리코씨. 그리고 우리들은 그걸 멀리서 바라보며, 아아 또냐 라며 어깨를 으쓱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언제나 그런 느낌으로 소란스럽고 쓰다듬으며 으르렁거리는. 그러나 마지막엔 언제나 깔끔하고 둥글게 정리되고. 그런 상냥한 세계가 있었다면 병이 발병한 세이쥬로를 일치단결하여 구해내려고 분주히 돌아다녔을 것이다. 치료용의 한단을 어떻게 해서라도 현실로 꺼내자며 우리들은 뜻을 같이할 것이 뻔하다. 결국, 세이쥬로의 인덕이 그 미래를 파괴했다. 타인을 표본으로서 수탈해 온 남자는, 지금 가장 바랐을 터인 건강을 손에 쥘 수 없다. 그게 아키라가 이 귀축에게 보내는 마지막 자비였지만, 그러나.
「동정했구나, 나를――」
요컨대 그 감정은 연민이다. 찾아온 호기를 역십자는 놓치지 않는다. 미칠 듯이 기뻐하며 드디어 그녀도 수형자의 고리에 걸렸다.
「아――――」
병에 찌든 마수가 다가온다. 일직선으로 내 안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주마등처럼 연장되는 체감시간. 순간을 영겁같이 느끼면서. 미라처럼 마른 다섯개의 손가락이 아키라의 진심을 잡았다. 그리고 두명은 눈치채지 못한다. 이것은 한단에 들어가고 나서 처음으로 보인 히이라기 세이쥬로의 변심이라는 걸. 노생이 되는 것을 꿈꿔왔다. 일심분란으로 그저 강하게. 그것이 지금 아키라의 꿈으로 목적을 변경한 것이다. 이 국면에 있어서 제1목표를 잃었다. 망집의 근간이었던 삶에 대한 갈망은 그의 안에서 너무나 강하다. 격렬한 충동은 이성의 사슬을 뿌리쳤다. 그걸 기회로, 계획대로 진행되던 현상은 뜻밖의 사태로 바뀐다.
「날 치유해라, 지금 당장……!」
세이쥬로는 아키라에게 바란다. 부디 내게 빛을 달라고.
「그래, 내가 널 치유해줄게」
아키라 역시 세이쥬로에게 바란다. 어둠을 없애주고 싶다고.
요구하는 자와 주는 자. 서로가 서로에게 같은 미래를 손에 쥐었다. 즉 합의, 둘이서 만든 틀에 빠져든다.
「그대가 날 의심해도, 난 아무것도 숨기지 않아―― 그대는 소중한 사람이니까」
뽑아내는 그 말은 의(義)의 견사의 대명사. 히이라기 세이쥬로라는 축생을 앞에 두고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인간은 과거 두사람 뿐이었다. 그리고 아키라는 마나세 고조의 딸이다. 누구보다도 아버지를 동경하고, 자랑스러워 하며, 사랑하고 있다.
「급단·현상――」
세이쥬로의 실책은 그 사실을 이 국면에서 잊은 것. 그에게 가장 귀찮은 인종의 피를 잇고 있는 아키라를, 그 부수하는 위험성을 무시해버린 것에 있다. 그만큼 이 남자가 품어왔던 병마는 무겁다. 따라서――
「이누카와 소스케―― 요시토!」
찰나, 사랑을 빼앗기기 직전에 솟아오른 것은 성스러운 빛의 기둥. 요구한 하나의 결과를 향하여, 여기에 협력강제가 발동된다.
「후후, 후후후후후. 크크크크크크,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의도찮게 눈을 뜬 아키라의 급단. 폭발적인 빛의 파동을 받고, 세이쥬로는 목이 갈라질만큼 하늘을 올려다보며 신나게 웃는다. 왜냐하면, 이 한단은 공격적인 것이 아니었다.
「공기가 맛있어!」
상쾌한 호흡을 할 수 있다.
「몸이 가벼워」
몸 속의 결정이 사라졌다.
「멋지구나! 이것이 죽을 병이 사라지는 감촉이란 건가!」
천사의 축복을 받은 듯이 모든 병이 치유되어 간다. 바라던 자신의 신체를 얻고, 쾌유의 고양을 소리 높여 갈채한다. 히이라기 세이쥬로의 생애는 항상 고통과 함께였다. 시한폭탄처럼 차례차례 발병하는 불치의 업병. 폭풍우처럼 덤벼드는 격통, 환각. 곪아 썩어가는 오장육부. 적출 불가능한 뇌종양. 좀스럽게 뜯어먹히며 죽음에 직면하고 있는 공포와 분노, 그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이 빛으로 사라져간다. 일찍이 없던 해방감이 생기가 되어 그의 안에서 질주한다. 최고다, 이거다 신세계―― 비원을 마침내 성취했다!
「아주 잘했어, 칭찬해주마! 아아 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거냐 네놈들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요시야와 아키라가 사랑스러워 어쩔 수가 없다. 자신에게 바쳐진 공물 중에서 최고의 공헌도라며 극찬한다.
「그러니 한 웅큼도 남기지 않으마. 이걸 최상급의 자랑으로서 앞으로도 날 위해 헌신하는 게 좋을거다!」
이렇게 편리한 걸 다른 놈에게 넘겨줄 성 싶으냐. 역십자가 제물을 요구하며 공명한다. 자, 최후의 한방울까지 자겨가기 위해 재구동 한―― 다음 순간.
「뭣――――」
안쪽부터 팔이 터졌다. 그리고, 이변은 그 뿐만이 아니다.
「커헉…… 어, 째서」
뼈가 분해된다. 피부가 노화된다. 체모가 빠지고 생기면서 교체된다. 날뛰는 고동이 멈추지 않는다. 니트로엔진처럼 폭발적 활동을 하고 있다. 이상하다, 자기회복을 해도 효과가 없다. 그 뿐만 아니라 치유하려고 하면 할수록 보다 심해져간다.
「이건, 설마……!?」
결과와 수단의 인과관계에 관하여 세이쥬로는 바로 상황의 진실까지 생각이 미쳤다. 자신은 분명히 지금도 정화를 받고 있다. 다만 그것이 상궤를 벗어난 과잉상태에 있는 것 같다. 이른바 과회복을 받고 있다고 간파했다. 이것은 통상, 자연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이상현상일 터다. 얼마나 이상한 생명이라도 스스로를 과하게 치료하는 일은 없다.
그리고 물론 아키라도 이렇게 잔혹한 공격수단을 꿈에 요구하는 인간은 아니다. 그녀의 급단은 본래 동료를 치유하는 성스러운 힘이다. 그 본질은 “요구하는 만큼을 회복시킨다”는 것이며, 말할 나위도 없이 깊은 애정으로부터 체득한 것이다. 광범위 사정거리의 총원순시회복……으로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 용도. 조건이 곤란할수록 힘이 강해지는 급단의 성질에 비추어 보면 절대 대단한 것은 아니다. 전투에서 동료가 아키라에게 치유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고, 거기에 응한다는 관계는 당연한 일이니까. 그들, 전진관 사이에서 그 신뢰관계를 요점으로 발현하는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급단이다. 본래라면 조리를 무시한 과회복 따위 일으킬 수 있는 꿈은 아닌…… 그러므로 이 자괴현상을 부른 것은 결코 아키라가 아니며, 합의한 세이쥬로에게 문제가 있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너무 요구한 것이다. 히이라기 세이쥬로라는 남자의 진실은 위독환자이며, 게다가 단 한 번도 건전한 상태를 체험한 적이 없다. 움찔하는 것만으로도 관절의 마디들은 삐걱거리며 삐뚤어지며, 항상 신체의 어디선가 병마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지식으로 밖에 정상인의 상태를 알지 못하고, 그걸 요구하는 갈망은 누구보다 깊고 무거웠다. 따라서 끝없이 바랐고, 아키라의 꿈은 응해버린다. 더 내놔라. 더 넘겨라. 내게 빛을―― 정화해라. 늦었다 생각했을 땐 이미 뒤늦음. 평범한 사람에겐 절대 불가능한 영역의 기원은 요구한 만큼 세이쥬로를 계속 치유한다. 그가 무엇도 부럽지 않게 될 때까지. 즉 이대로 모두 불타버려 재가 될 때까지. 인과응보로서 방문한 결과를 이를 악물면서――
「자멸하라는거냐, 웃기지마아아!」
스러져 날아가버릴 수 없다는 분노의 고함도 허무하게 공간을 흔들 뿐이었다. 너무 격렬한 혈류속도에 모세혈관이 견딜 수 없다. 급속한 초신진대사, 세포가 곧바로 노폐물로 변해간다. 육체가 단번에 산화하고, 그걸 막기 위한 항산화 작용이 더욱 더 내장기관을 활동시킨다. 멈추지 않아. 멈추지 않아. 빛에 물어뜯겨 살해당한다――! 그토록 바란 치유의 손에, 그는 숨통이 끊어져간다. 그러니――
「알겠냐, 결국 그런 거다」
「부럽다 부럽다고, 넌 너무 많이 바랐어」
다친 몸을 일으켜 이자식의 패인을 들이댄다. 격노하면서, 동시에 녀석은 놀랐다. 내 말이 고하는 사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으니까.
「만약 너의 안에서 한조각이라도 정이 존재하고 있었다면. 어머니나 고조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면―― 분명히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거다. 그렇지, 아키라」
「아아. 알아, 요시야」
소중한 이름은 이미 생각해냈다. 내 이름은 히이라기 요시야. 동료의 이름은 세라 미즈키, 타츠노베 아유미, 가도 린코, 오오스기 하루미츠, 나루타키 아츠시. 소속은 천신관―― 어머니의 성함은 히이라기 에리코, 아키라의 아버지는 마나세 고조. 이녀석 덕분에 되찾을 수 있었어. 놀라고 있는 건 빼앗았을 터인 너뿐이다 세이쥬로.
「있을 수 없어…… 넌 내 손으로, 기억도 정신도 빼앗겼을 터다. 도리가 맞질 않아, 아아 어째서냐, 네놈 대체 뭘 한거냐!」
따라서 지금도 이런 상황마저 모른다. 나도 사람, 그도 사람. 자신과 타인을 대등하다 생각하지 않는 그 일그러짐. 이 마지막 순간에서 치명상이었다는 걸 아직 생각도 하지 못하는거냐. 화를 넘어 이젠 불쌍해. 이것도 악감정이지만, 그 이상으로 슬프다고 느낀다. 그러니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된다. 매우 소중하고, 그리고 당연한 것을. 내가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 따위 누구라도 알 수 있는거다.
「간단해. 뭐라 하든 난 이녀석을 사랑하고 있다」
가슴을 펴고 단언한다. 이 사실이 날 지지했다.
「마음은 물건 따위가 아니니까」
감정은 한번 없어졌다 하여 그대로 두 번 다시 살아나지 않는가? 다르다―― 몸은 확실히 그렇다 하여도, 마음은 안에서부터 길러가는 것이다.
「얼마나 빼앗긴다 해도, 다시 얼마든지 솟아나는 거다!」
그렇게 포효하며 이 마음을 부딪히기 위해 뛰쳐나간다. 용기가 있어, 공포도 있어…… 저자식이 무서워, 그래서 지지 않겠다고 느끼고 있어. 정도, 사랑도, 인의팔행에 속하는 모두. 다시 살아난 다수의 마음이 가슴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최대의 승기를 놓치지 않아. 이걸로 너와 결착을 낸다……!
「――가까이 오지마!」
순간, 역십자를 뚫고 나타난 것은 특별할 것도 없는 왼팔. 정체 모를 이생물에게서 멀어지듯이 세이쥬로가 순간 내지른 것이 그것이었다. 그 팔에 어째서인지 기시감을 느끼지만…… 하지만 딴 생각 할 유예는 없어. 아마도 이것이 녀석의 최후의 수단이겠지. 지금까지 숨겨둬 왔던 비밀 중의 비밀, 다른 것과 비교해 봐도 쓸만한 도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을 발생시켰다.
「뭐지, 이건……!?」
이상해, 땅을 차고 있는데도 접근할 수가 없다. 얼마나 다리에 힘을 집중해도 추진력 그 자체를 살해당한 듯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게 됐다. 이건은 뭐지, 어떻게 된거냐. 경치가 움직이지 않는 걸 보면 간섭을 받고 있는 건 공간 자체인가? 아니면 내 인식이 미쳐가고 있는 덕에 제자리걸음 하고 있을 뿐인가? 직진하는 것도 곤란하게 되어 아무 방향으로 몸이 흐를 거 같다. 이 난관을 넘지 못하는 이상 세이쥬로에게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와 비교하면 대단한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놈들이…… 깃털과 같은 주제에 가볍게 다가오지 마. 기분이 더럽다!」
그러니 내게서 멀어져라, 자신의 집념과 비교하면 넌 어차피 솜이나 깃에 불과하다…… 그 정신과 호응하여 수수께끼의 공격이 더욱 효과를 강화한다. 원리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몸의 평형감각이 명백히 터무니없는 상태로 빠져든다. 바로 직진할 수가 없다. 힘을 넣은 성과가 없고 마치 공기 자체에 희롱당하는 느낌이다. 수십미터의 거리가 만리로 착각될 만큼 저 멀리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난 다시 이녀석을 바보라고 생각했다.
「어이 없군, 가벼운 건 대체 어느 쪽이냐」
빛을, 더욱 빛을 원하며 상대의 빛을 빼앗아 온 남자가 말하지 마라. 타인의 소유물로 장식하고 자신은 이걸로 위대하다고 위장해왔을 뿐이지 않나. 질 수 없는 기분을, 무리해서라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는 힘으로 바꾼다. 아마 이용하고 있는 건 해법이나 창법…… 내 무언가를 크게 캔슬하고 있는 건지, 공간 그 자체에 특성을 가하고 있는 건지. 또는 그 둘 다인지. 어느쪽이든 분석할 시간마저 내겐 아깝다. 확실히 세이쥬로도 서서히 붕괴하고 있지만 내게도 이게 최대한의 성패다. 신속하게 결착을 내지 않으면 이쪽이 패배할거다. ――따라서, 나아간다. 십의 힘으로 일보밖에 접근할 수 없다면, 백의 힘으로, 천의 힘으로. 그래도 무리라면, 만의 힘을 쥐어짜내 돌격한다. 극법의 일점에 모든 자질을 쏟아부어 역십자에게 돌진한다. 그저 똑바로.
「새겨둬라, 이게 히이라기 요시야다. 어머니가 키워주고, 아키라가 믿어줬기 때문에 난 여기까지 겨우 도달할 수 있었다. 절대 네 피가 있었던 덕분이 아냐. 너에게 받은 혈통같은 거, 요만큼도 없다고!」
가장 말해주고 싶었던 말을 던지면서 크게 팔을 쳐든다. 저기, 어머니. 내가 지금부터 이녀석을 그 세상에 보내줄게. 우리들이 받은 것…… 애정, 긍지, 거기서 나타나는 의(義)의 강함. 그걸 되도록 보여줄 셈이야. 바보는 죽어도 낫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왕바보 자식은 어떨까. 그래도 반드시, 이번에야말로 뭔가 바뀔 거라고 믿고 싶으니까. 뒤는, 당신에게 맡깁니다.
「그러니까 어머니, 행복하시길」
그렇게 바라면서 휘두른 일격이 히이라기 세이쥬로를 폭산시켰다. 휘두른 일격에 대단한 위력은 없었지만 한계 직전이었던 녀석의 몸은 산산조각으로 날라갔다. 끝없는 재생과 회복의 연속에 섞인 한방울의 파괴행위. 그것은 지금까지 무너지기 직전에 유지되고 있었던 저울을 단번에 파멸로 기울게 한 것이다. 세이쥬로가 사라져간다…… 배후에 붙잡아놨던 악덕의 역십자와 함께. 잡혀있던 어머니들의 마음이 드디어 본인이 있는 장소로 돌아갔다.
이 파트의 묘미는 세-지와 요시야의 대화. 괴멸적인 인간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주는 세-지와 도저히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아들내미 요시야의 극과 극이 대립하죠. 특히 좋았던 부분은 자신에게 노생의 자격이 있는건 당연히 어머니의 인과 덕일텐데도 그런 간단한 모순을 눈치채지 못하는 세-지의 논리를 반박하는 장면과, 오리지날리티가 없다고 디스하는 요시야를 그러는 네놈이야말로 오리지날리티가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하는 세-지. 하나 웃긴건 주장의 논리는 그렇다치고 요시야의 기술들 역시 전혀 오리지날리티가 없는데 말이죠...
세-지의 급단 협력강제 조건은 이 작품에서 가장 잘 만든 조건이라 생각합니다. 빡친다, 밉다, 불쌍하다, 동정이 간다 등등 그를 앞에 두고서는 이러한 부의 감정 외엔 품기 힘든 게 히이라기 세이쥬로라는 인간입니다. 희소종에 대한 생물의 본능. 미지의 괴물을 해석하고, 도리라는 족쇄를 채워 안식을 얻으려 도모한다는 말은 정말이지 공감가는 말. 그리고 그런 '알고싶다'는 감정마저 이용하는 세-지의 인간쓰레기다움이 더욱 부각됩니다. 그야말로 귀축외도. 정의로운 주인공이자 어머니를 살해당한 요시야는 계속 ㅂㄷㅂㄷ거리며 이 조건에서 벗어날 수가 없죠. 그렇기에 나중에 나오는 8층 클리어조건이 되니 그때와 비교해서 이 파트를 보는 것도 재밌습니다.
아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세-지의 썩은 표정이 완전 매력적. 보고 있으면 막 심쿵거림. 사실 마사다 작품 중에서 이렇게 대놓고 비열한 표정을 보여주는 캐릭터가 거의 없죠. pv 때부터 뻑감.
히이라기 세이쥬로의 진실은 이미 구제할 길이 없는 위독환자다. 꿈의 가호가 없으면 혼자서 식사를 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운 사회적 약자. 육체적 강함은 어린아이에게도 뒤떨어지는 모양이며, 도저히 타인에게 오만한 태도를 관철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타인이 없으면 며칠도 살지 못하고, 실제로 그런 인생을 지냈을 것이다. 에리코나 고조가 곁에 없었으면 한단법의 완성도 불가능했다. 도중에 죽을 뻔했던 일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그렇다 하는데도 세이쥬로는 있는 그대로의 귀축이다. 감사의 마음따위 한조각도 품지 않는다. 오히려 어쩌라는 거냐, 역일 터다. 네놈들이야말로 내게 사용되니 영광으로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도리가 통하지 않는 불손함을 전방위로 퍼붓는다. 그리고…… 그렇기에 누구도 이 남자를 방치할 수 없다. 눈을 돌리고 거절하든지, 성심껏 보살펴주든지. 어느 쪽이든 무감각으로 있는 것은 절대 할 수 없다. 그래, 결코.
죽을 병에 침식된 신체는 약하고, 추하며, 보는 것만으로도 불안하게 되는 상태니까. 이 남자를 아는 자들은 그대로 둘 수 없고, 내버려둘 수 없다. 히이라기 세이쥬로를 시야에 넣고도 어떠한 감정을 품지 않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다 말할 수 있다. 중병인을 내버려두는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싫다고 멀어지는 것도 큰 기피감과 생리적 혐오감이 심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악랄한 것은, 그 자신이 그러한 감상을 품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서 이용한다는 점에 있다. 약해져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이런 처지라면 누구라도 미친다―― 그도 원해서 병에 침식된 것은 아니다―― 등, 사소한 동정심이라도 품어버린다면 이미 세이쥬로의 생각 대로다. 질투의 십자가에 매달리고 모든 빛을 빼앗긴다.
이런 남자를 타도한다니, 멀쩡한 감성으로는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분노나 증오를 품지 않는 것은 할 수 없고, 그렇다 하여 깔끔하게 때려잡으려 해도 중병인이라는 사실과 사정이 대립하는 자에게 동정을 권한다. 무언가를 느끼지 않고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히이라기 세이쥬로를 타도할 수 있는 자는 이 귀축을 마음 속부터 사랑할 수 있는 자뿐. 아내나 친구, 그리고 아들을 단순한 공물로 인식하고 있는 남자의 근성. 그것을 충분히 알고, 더 나아가 긍정할 수 있는 존재만이 그를 쓰러뜨릴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 그런 조건에 합치하는 자는 한단에서도 악마뿐이다. 아마카스나 신노처럼 외도를 축복하고 귀축을 갈채하는 상대만이 역십자의 형태에 들어맞지 않는다.
혹은 애당초 사람의 도리를 갖지 않는 천재지변이라면 통과할 것이다. 쿠보처럼 인류 그 자체를 길가의 돌이라고 생각하는 무리라면 세이쥬로를 미워하고 말고도 없으니까. 그리고, 그렇기에 그의 승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에리코를 죽였다. 친구를 다치게 했다. 요시야는 반드시 분노할 것이다. 의분이라는 악감정을 불태우는 정의로운 남자…… 그에게 있어서 이정도로 용이한 사냥감이 어디 있을까.
길었던 삶과 죽음의 투병도 여기서 끝이다. 다시 태어난다. 노생이 태어난 오늘 이날이, 히이라기 세이쥬로의 생일이다.
「자 축복해라, 나의 여호수아」
너의 모두를 꿈의 마지막 조각에 이를 때까지 위대한 창조주에게 바쳐는 게 좋을거다. 너는 나를 위해서만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다. 히이라기 요시야라는 그릇은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난 선물이니까.
「거절이다」
「멋대로 하라지」
입을 열자마자 고해진 의미를 모를 말을 의연히 상대에게 되돌려준다. 축복하라고? 바보같은 말이군. 대체 너의 뭘 보고 뭘 찬송하라는 거냐. 경치에서 부각되고 있는 흰색양복이랑은 반대로 경내의 어둠보다 더 어두운 불길한 흉조가 전신에서 배어나오고 있다. 흘겨보는 시선은 아이처럼 순수할, 터인데 사악이란 말보다 더한 삐뚤어짐.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다. 이자식은 정말로, 어디까지나 최저인 채다…… 갱생의 여지가 한 움큼도 안보인다. 그게 열 받고, 동시에 매우 슬퍼진다. 그래서 이렇게 대치할 때마다 내 안에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용암이 되어 흘러넘친다. 구역질이 나오는 역겨움은 지금도 더 강해지고, 깊어진다. 공간에 독을 늘어뜨리는 것처럼 당장이라도 내게 모두를 빼앗고 싶어서 어쩔 수가 없는 굶주린 늑대같은 눈빛이 말하고 있다. 격돌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그걸 결심하고 왔으니까 이제 와서 마음에 두려움은 없었지만. 최후의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이것만은 분명히 해둬야 한다.
「하나만 들려줘라. 아키라가 말하기를, 너는 내가 가진 힘…… 꿈을 현실로 꺼내는 서버권같은 걸 강탈하려는 거군. 그러면, 너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히이라기 에리코는 어디까지나 그것만을 위한 인간이었나. 단지 날 만들어내기 위한 부품에 지나지 않았다는 건가」
「그렇다만?」
말을 고르지 않는 한숨의 긍정. 이녀석은 반대로 이쪽의 제정신을 의심하고 있다. 왜 이제 와서 그런 다 아는 걸 묻느냐는 듯이.
「내게 있어 너는 노생이 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아. 그를 위한 수단으로서 시험관은 필요하겠지?」
「그럼, 어째서 어머니를 선택했나」
「아아」
그걸 듣고 녀석은 태연스럽게, 그저 한마디.
「근처에 있었으니까다. 조달의 수고를 덜었지」
허무하게도 최저의 사실을 입에 담는다. 마치 근처의 개나 고양이로부터 적당히 골랐다는 말. 이녀석에게 있어 어머니는 진실로 그런 거라고 깨달았다. 부들거리는 주먹에서 한방울의 피가 흘러내리고, 움켜쥔 손끝을 심홍색으로 더럽힌다. 왜, 어째서, 이 남자는 이러한가…… 그리고.
「고작, 그정도의 이유로……」
「요시야……」
날 혼자서 키워 준 어머니는 네게 모든 걸 빼앗겼다는 건가. 그냥 운이 나빴다고, 그걸 납득하라고 하는 거냐.
조용히 노기를 발산하는 나를 보고 녀석은 납득한 듯이 끄덕였다. 그리고 마음 깊이, 시시하다고 말할 듯하게 낙담의 한숨이 샌다.
「과연, 납득했다. 즉 너는 에리코가 우수한 여자였다고 믿고 싶은 거군. 저게 뛰어난 모체였으니까, 어떤 전형기준에 일치했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내가 손수 공들여서 선택했다고―― 바보냐 너. 정반대잖냐. 물건의 도리를 모르는군. 그년의 피가 섞이면 여기까지 머리의 회전이 나빠지는 건가? 네가 노생이라는 자격을 얻어서 태어난 건, 당연히 내 종이 우수했기 때문이다. 사막이든 심해든, 종을 뿌리면 나라는 재기는 어디서든 싹이 튼다. 극론, 에리코의 배든 개의 배든 배양액으로서 같은거다. 어머니의 명예가 이렇다 저렇다, 시시한 구애로 모독하지 마라」
진심으로 그게 세상의 진리라고, 그런 얼굴로 설명하는 이자식이―― 아아 젠장, 의식이 비등할 거 같다.
「아키라, 미안하다. 슬슬 참는 거도 한계다」
「말 안해도 알아. 나도 기분은 마찬가지니까」
느낀 인상은 완전히 동일. 이자식은 글러먹었다 외엔 없다. 괴멸적으로 끝나 있는 인간성은 분명 한번이나 두번 죽는 걸로는 고쳐지지 않을 정도로 병들고 미쳐있는 것이었다. 죽을 병에 침식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가…… 아니면 선척적으로 이런 건가. 어느쪽이든 늦었다, 넌 많은 자들에게 사죄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죄할 수 없다면, 적어도 저세상에서 갚아야 할거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효도. 내가 이 손으로 널 어머니와 만나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너의 착각을 바로잡아 주마. 히이라기 세이쥬로는 노생이 아니지만 히이라기 요시야는 노생의 힘을 갖고 있다. 이 힘이 무엇인가, 어떤 것인가는 내게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지만 그것이 대체 어디서 왔냐고 한다면…… 그 인과는 어머니 외에 존재하지 않을 터다」
임계점에 이르는 공기 속에서 무기를 창조하면서 본인만이 눈치채지 않은 모순점을 지적한다. 어린애도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유전론이다. 너의 피에는 어떤 우성도 머물지 않았다. 그러니――
「네놈의 이론은 최초부터 파탄하고 있는거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아――!」
여시축생발보리심…… 지금부터 우리가 어머니는 보살의 마음에 이르고 있었다고 증명해준다! 끓어오르는 의분을 철의 막대에 실으면서, 싸움의 화약고는 열렸다.
밤의 경내를 비추듯이 몇 번이고 불꽃이 튄다. 1초에 최소7회, 많이는 20회. 지르고 지르는 폭력을 전부 맞기 직전에 격추하면서도 그 위력에 기 죽는 일 없이 다음 공격으로 연결한다. 지난번과 같은 추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난 싸우고 있다. 이 악마같은 남자을 정면으로 상대하고 있다. 어머니를 살해당하고 동요하며 어쩔 도리 없는 상황에 농락당한 그때와 같지 않다. 단련해온 시간과 그동안 겪었던 죽음의 고난이 일거일동에 있어 힘의 결정화하여 축적됐다. 구동하는 한단은 과거 최고의 강력함이다. 질 수 없어, 반드시 이긴다, 그 신념과 용기가 지금도 등을 떠밀고 있다. 하지만―― 그럴텐데도 녀석은 자릿수가 빗나가고 있다. 아니 이경우는 더 악랄하다 해야 할까.
「――윽, 크윽!?」
직각으로 휜 주먹이 이상한 궤도를 그려와, 강력하게 안면을 쳐맞았다. 코뼈나 두개골을 분쇄할 수 있는 위력이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그 직전에 일어난 일. ――또다. 이걸로 몇 번째인가 움직임이 스르륵 변했다. 마치 사진영화처럼 깜빡이는 순간에 히이라기 세이쥬로라는 남자는 전투방식을 여기저기 대체한다. 공격을 먹은 건 일합 전에 얻은 대책이 어떤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격이탈, 일격필살, 전광석화, 변환자재…… 손기술, 발기술, 유술, 강술, 살인활인, 1대 1부터 다대 1까지 다종다양…… 절조도 없이. 끓는물처럼, 장맛비처럼, 노도로 질러오는 변환자재의 공격. 심지어 고동의 템포마저 바꿔가면서 히이라기 세이쥬로는 공격을 거듭해온다. 게다가 그 움직임이 뭐든 예외 없이 달인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면 밀리고 있는 것은 자명한 논리다. 이게 만약 5개나 6개의 패턴이라면 어느 정도의 초일류라 하더라도 대응이 가능하다. 그 정도의 상대라면 이만큼 애먹을 일도 없다. 하지만 이건 너무나 수단의 수가 다채롭다. 이 불길한 공기와 외측만을 남기고 알맹이가 아예 딴사람으로 바뀌어 가면 전투 중에 예측하는 것조차 할 수 없으니까. 소질을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는 내 파단하고 전혀 다른, 이질의 업. 그리고 그 정체도 이미 짐작하고 있다.
「그게 네가 빼앗아 온 빛이냐」
「그말대로, 내가 집적한 도구들이다」
그때 우리들에게 썼던 것의 진실이 이거다. 이녀석은 타인의 자랑을 빼앗고 써먹는다. 거기다 선생님의 예를 보건데 약탈하는 대상은 물리적인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상대가 쌓아올려 온 노력이나 재능, 자칫하면 마음이나 인생마저 이 기술에 빠지면 도려내진다. 그리고 그걸 도품의 왕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사용하고 있었다. 아아, 확실히 강해, 만만치 않아. 그런데 말이지.
「얼마나 한심한거냐 넌」
타인에게 쥐어뜯은 힘을 자신의 물건인 마냥 의문도 느끼지 않고 과시하는 철면피.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자신을 자신답게 하는 오리지날이 전혀 없어. 다른 사람의 등에 빌붙어서 살아갈 뿐이잖나!」
그 감성을 난 근본부터 이해할 수 없다. 오리지날리티 어쩌구 보다는, 타인이 갈고 닦은 것에 대해 경의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 믿을 수 없다. 칭찬받아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걸 연마해온 사람들일텐데도. 단지 도구. 내꺼. 넌 날 위해 태어났으니까 내가 사용하는 게 뭐가 나쁜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사고회로로 완결하고 있다. 이 얼마나 텅 비어있는가. 알맹이가 제로다. 이녀석 안에서 병마와 증오를 빼버리고 난 다음엔 허무 밖에 남지 않는다.
「시시하군. 그러는 너야말로 전혀 오리지날리티가 없는 주장이다. 나를 상대하는 인간은 모두 그런 반응을 하지. 네놈들이 보기엔 꽤나 이단 같겠지만…… 그렇기에 결국은 알고 싶어한다. 그건 희소종에 대한 생물의 본능이다. 미지의 괴물을 해석하고, 도리라는 족쇄를 채워 안식을 얻으려 도모하지. 인류는 미지를 구축하여 영장류의 왕이 되었다. 전혀 이상할 건 없어」
특별한 것을 그저 특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력을 알고 싶다는 보편적인 감성을 이녀석은 배 속 바닥부터 깔보고 있다. 그런 꼬라지니까 너희들은 무른거라고, 병든 눈빛이 말하고 있다.
「이해 할 수 없겠지? 알고 싶어서 견딜 수 없겠지? 그리고 난 너희들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가르쳐주려 하는거다」
단언하며 하늘을 칭송하듯이 양손을 벌려.
「자, 내게 잠복하는 병마를 알아라」
무언가를 고한 순간 공격하러 덤벼든 내 오른팔이 근원부터 소멸했다―― 뿐만 아니라 더더욱 이상사태는 계속된다.
「크아악, 악……!?」
녀석의 배후에서 날아온 것은 내 오른팔. 총알도 비웃을 속도와, 무엇보다 심리적 동요로 직격을 먹어버렸다. 기우는 몸을 보며, 그러나 녀석은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 우스운 인형을 바라보듯이, 변함없이 영리한 얼굴을 향하면서 또렷하게 말을 하기 시작한다. 오만불손한 여유 그대로.
「서단, 영단, 파단은 알겠지. 그럼 부모의 정이다. 그 다음을 가르쳐주마. 이것이 급단. 그 본질은 3가지 이상의 꿈을 동시에 겹쳐서 사용하는 것, 그리고 파단으로 얻은 특질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나와 너, 피아 사이에 특정순서를 밟게 하는 걸로 협력강제를 일으킨다. 상대가 깔아놓은 법칙에 올라탔을 경우 그것은 합의라고 보게 된다. 별로 드문 것도 아니지. 사무라이의 칼끼리 부딪혔을 때의 약속된 대결, 동서고금을 보면 그런 의식은 얼마든지 눈에 띌 터다. 상대와 자신이 모두 하나의 룰을 준수한다. 따라서 필살, 발동하면 도망칠 수 없다. 그도 그럴 게 상대의 합의에 올라탔으니까」
그것은 어느 의미로 당연한 거다. 서로 같은 룰을 지키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 것은 얼마든지 있다. 체스나 트럼프, 스포츠 등은 그 중에서도 분명한 것이다. 상대선수가 같은 룰 위에서 대결하기 때문에 게임은 성립되고 서로의 역량을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반대로 말한다면, 협력하여 하나의 법칙을 조립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까고 말해서…… 상대를 굴복시키고 싶을 뿐이라면 불의의 습격이라도 하는 게 훨씬 손쉬울 거다. 적과 자신의 사이에 특정행동을 금기하고, 그리고 반대로 장려한다. 그 형태를 지킬 경우 본래 존재하지 않는 법칙은 바로 그 순간 형태를 띄게 된다는 건가. 그리고 그것은 아마 자각의 유무따위 필요없다.
「내가 했던 행동이 네가 제시한 급단의 발동조건에 합치했다…… 그런 거냐」
「그렇다. 이것의 핵심은 어떤 식이든 상대가 깨닫게 하지 않고 그 조건을 밟게 하는가에 있다」
예를 들어 체스 룰을 모르는 초심자가 있다고 하자. 말의 움직이는 방법조차 모르는 그녀석이랑은 유희를 성립하게 하는 협력 작업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상대쪽이 능숙하게 유도하여 대국을 끝까지 해냈을 경우, 그것은 게임 룰을 모르는 채 지키고 있었다는 형태가 된다. 그러므로 협력강제, 합의를 얻는 다는 건 그런 거라고 세이쥬로는 말하고 있고, 나도 이제 와서 확신했다. 이녀석의 조건은 사전에 예상했던 대로. 그러나 알고 있었다고 해도 결코 회피할 수 없는 종. 아니, 오히려 알면 알수록 빠져든다. 깨닫지 않게 하는 것이 핵심이니 뭐니 하면서 술술 지껄이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천지가 뒤집혀도 뒤집을 수 없는 살인기술로 기능하는 것――
「넌 날 미워하지 않은 채로 있을 수 없다―― 그건 알고 싶다는 감정이며, 빛을 주고싶다고 부탁하는 거나 다름없지. 난 네가 부럽다―― 그건 너의 빛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며, 동시에 이해해도 상관없다는 허가나 다름없지」
즉, 그것이 히이라기 세이쥬로가 제시하는 협력강제의 조건. 증오, 분노, 적개심…… 그런 감정을 근본으로 하는 흥미의 마음이 최악의 저주가 되어 양자를 연결한다. 알고 싶다. 그리고 알게 하고 싶다. 싸움의 요점을 따지고 보면 그러한 이상, 역십자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크아악――」
순간 나를 덮친 것은 비교할 수도 없는 구토였다. 독안개로 가득 찬 듯이 대기는 청정함을 잃어간다. 생존본능이 죽음의 위기 이상으로 격렬한 무서움을 느끼고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었다. 여기에 있어서는 안된다. 더 이상 이남자를 시야에 넣는 것은 위험하다. 보면 최후, 생애를 침식하는 최대의 죽을 병에 감염된다고 확신하……
「마르라 시들라 병을 살찌워라. 가득함이 마름과 같이, 가라앉아 살찌워라」
흘러나오는 저주와 함께, 녀석이라는 제조자가 놓치지 않겠다고 단언한다.
「급단, 현상―― 생사지박·파리란궁역십자가」
그리고 요시야에게 최악의 지옥이 출현한다.
「이, 것은――――」
이 광경을 난 어떻게 표현하면 되는걸까. 말이 나오지 않는다. 형용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강력한 악감정이 머릿속을 폭발하듯이 뛰어다닌다.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상상이 가는 만큼 어쩔 도리 없이 불안하게 된다.
「사랑을 안다. 정도 안다. 사람의 성질에 속하는 모든 것을, 나는 빠짐없이 알고 있다. 그러니 물론, 나 자신의 사악함도 누구보다 이해한다. 난 내가 원하는대로, 있는 그대로의 귀축으로 있을 뿐. 거기에 후회따위 한조각도 없다」
역십자의 포로들이 규환한다. 그것은 히이라기 세이쥬로의 어둠에 접하고 제물이 된 모든 사람들. 이 남자에게 부러워해진 비참한 말로가 거기에 있다.
「넌 나를 위해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내놔라. 그 빛은 내꺼라고, 병든 두 눈을 번득이며 손을 뻗는다.
「내게 부족한 것은, 단지 노생의 자격뿐이다」
이 외도를 앞에 두고 웃을 수 있는 감성 따위, 그야말로 악마 외에는 가질 수 없겠지. 또박또박 말하는 꼴을 용서할 수 없다. 하물며, 아아 하물며 그것은――
그 사람들, 은――!
「이 새, 끼가아아……!」
격앙한 순간 발을 디디려 한 다리가 소실했다. 그래서 어쩌라는거냐. 그런 고통이나 손상마저 머리에서 조금도 차지하지 않는다. 어떤 모습이 되었다 할지라도 내가 그 사람들을 잘못 볼 리가 없으니까. 용서할 수 없어, 용서할 수 없어, 그렇게 생각하는 한 더욱 술수에 빠진다고 해도…… 그래서 어쩌라는거냐. 이런 악행을 보고도 화내지 않는다면 남자가 아니다. 그런 바른 마음을 가지도록 난 키워졌으니까.
「증오와 애정은 표리일체, 라고 자주 말하지. 누구든 상대를 모르면 그런 종류의 정은 성립하지 않아」
그러므로 악마는 조소한다. 깊게 계속 빠져가는 나를 귀여워하듯이.
「날 미워하고, 동정하나?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한탄스럽나? 알고 싶다고 한다면 좋아, 가르쳐주지. 난 네가 부럽다. 등가교환의 성립이다」
악감정을 계기로 히이라기 세이쥬로에게 흥미를 품게 되는 것. 그리고 세이쥬로 자신이 상대가 가지는 장점을 부러워하고 원하는 것. 이 두 조건이 상호 간에 달성된 결과가 이거다. 우리들이 가진 빛과 이자식의 병이 그대로 교환된다. 실제로 방금 전부터 토혈이 멈추지 않는다. 놔내물질이 통각을 완화하고 있지만 병마를 받고 있는 건 틀림없겠지. 이 남자를 구성해왔던 세계관의 근원이 깊게 신체를 침식해간다. 당연히 적의를 계속 품는 한 그 끝은 오지 않는다.
「그렇다, 넌 이걸 깰 수 없어」
그리고 탈출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여기는 녀석이 창조한 공간이니까. 기본은 아마도 창법의 양면을 이용했을 것이다. 거기다가 타인에게 뺏은 꿈을 덧붙여서 동시전개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자식의 자질은 전방위형. 타인의 찬탈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그 소양도 모든 방면으로 고수준에 도달한 괴물이라고 이해했다. 그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것뿐. 얼마나 밉다고 바래도 탈출불능, 공략불능, 세이쥬로가 자랑하는 우위는 압도적이고 흔들리지 않는다.
「역십자에 잡히지 않는 것은 아마카스나 신노같은 악마 뿐이다. 혹은 사람의 도리를 모르는 사룡같은 인간 외이거나. 어느쪽이든 네게는 결코 불가능. 양식이라는 짐을 짊어졌기 때문에 매우 간단히 역십자에 걸리지. 봐라」
「요시야, 요시야아아……」
「미안하다 모두…… 내가 한심해서……」
「아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핫! 일어서 히이라기, 한번 더 굴려줄까?」
「빨리 도망쳐」
「우리는 괜찮으니까」
「너까지 이렇게 될 필요는 없어」
괜찮니. 사랑하고 있다. 살아남아라, 차례차례 던져지는 애정으로 가득 찬 성원을 듣고――
「어떠냐, 도움이 될 거 같나?」
저 티끝들이, 라는 멸소를 본 순간 이성이 한계를 돌파했다. 이새끼, 잘도―― 용서 못해!
「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한 신체는 깊게 병들어간다. 피부 아래에 지네가 기어다니는 감각이 생기기 시작하고, 목 위에서는 두통이 폭풍우처럼 끊임없이 의식을 휘젓고 있다. 환청에 환시, 한데 섞여가는 오감은 바로 서있는 일도 허가하지 않는다. 전신에 흐르는 혈액은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 깎여간다. 빼앗긴다. 의분을 품으면 품을수록 히이라기 요시야는 줄어들어 간다. 전신의 뼈에서 칼슘이 사라진다…… 버티려했을 뿐인데도 전신의 뼈에 치명적인 균열이 간다.
그러자 세이쥬로의 배후에 매달린 신체가 서서히 윤곽을 띄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거울 너머로 본 인물의 모습에 조금씩 살과 뼈가 덧붙여져 간다.
「그런가, 그것이……」
「보이는가? 이게 완성했을 때 넌 내 것이 된다」
도취로 가득 찬 선언은 내 인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축복이었다. 사지가 사라지고 내장각종이 이것저것 빼앗긴다. 병소가 된 신체는 붕괴되고, 뻗어오는 손을 뿌리칠 수도 노려볼 수도 없게 된다.
5층 결전 직전 3꼬츄들의 즐거운 담소?입니다. 참 쿵짝 잘 맞죠 얘들. 있는 그대로의 귀축이길 바라는 노력충 세-지와 그에 감동마저 느끼는 아마카스, 세-지 옆에서 촐싹거리며 그에게 최고의 절망을 약속하는 신노. 여기에 나중에 다시 나오면서 의미를 가지는 대사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철두철미 귀축이니까. 그것을 긍지로 삼고 있기 때문에. 사랑을 안다. 정도 안다. 사람의 성질에 속하는 모든 것을, 자신은 빠짐없이 알고 있다. 그러니 물론, 나 자신의 사악함도 누구보다 이해. 난 내가 원하는대로, 있는 그대로의 귀축으로 있을 뿐. 거기에 후회따위 한조각도 없다. 따라서 이 세상은 삼라만상, 날 빛내는 주춧돌이다. 자, 너희들의 빛을 내놔라. 나는 어떻게든, 그것이 부러워서 어쩔 수가 없는거다.
이 대사는 pv3부터 나왔었고 세-지를 가장 잘 요약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살고싶다, 부럽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을 가지고 악당의 대명사급 인간쓰레기가 탄생. 그의 결말은 8층 결전 후에 정해집니다. 사실 그 장면이 가장 번역하고 싶은 파트.
이 씬은 신노의 한마디한마디가 참 재밌어서 번역한 파트이기도. <그니까 그게 싫단 말이지~>, <좀 더 함께 악역처럼 이거저거 하자앙. 그 날의 뜨거운 우정은 대체 어디로 간거니>, <힘내라, 힘내라, 세~지~! 자, 절망까지 바로 앞이다>가 특히 성우연기까지 해서 꽤 웃겼습니다.
예배당, 신전, 신사…… 그들, 하늘과의 통신을 목적으로 설치된 시설은 불리는 방법에 차이는 있지만 역사상 모든 나라에 존재하고 있다. 정신이 성숙한 동물은 짓궂게도 자신 이외의 누군가를 강렬하게 존중하기 시작하는 경향이라도 있는 것일까. 일대 국가부터 고산지대에 사는 소수민족까지 거의 예외 없이 인식할 수 없는 절대자와 대화하기 위해서 특별한 공간과 장소를 정해서 모신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화의 질서를 보다 반석으로 바꿔온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서로 잡아먹기 시작해버린다.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그저 건전하게 사는 것을 할 수 없다. 근대화가 진행되기 이전, 신비로의 외경으로 흘러넘치고 있던 세계에서 특히 그것이 현저했다. 현상의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세상의 태반을 손질한 허구의 교과서에 맡겼다. 번개가 어떠한 도리로 떨어지는지, 지진이 어째서 발생하는지, 그들은 모두 원인불명의 천재지변이다. 검증하기엔 당시에 압도적으로 지식이 부족했고, 그 때문에 만난 적도 없는 재정자에게 발생원을 이것도 저것도 맡겨왔다.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한 사상이라는 진정제…… 라고 한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하지만 사람들은 공상의 체계를 창조하는 데 열중했다. 어찌됐든 그들은 형편에 맞다. 자신들이 낳은 종교이니까 어느 의미로 그것은 당연하고 그 때문에 더욱 열중하게 된다는 순환구조가 발생한다. 이 땅은 일조시간이 길기 때문에 태양신이 지내는 장소. 이 자는 무녀이며, 우리들이 신의 번역자다. 만물은 신의 창조물이라는 대전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악마마저 시련의 사도로서 데려왔다. 긴 시간을 들여서 계속 창조한 설정은 파탄하지 않도록 모든 틈을 부수고 현대까지 계속 존속했다.
따라서 그 무의식은 한단의 꿈에 대해서 절대의 지배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예배당, 신전, 신사…… 그들, 신역은 만인이 마음에 그리는 성지로서 장관스러운 군림을 계속한다. 대일본제국이 자랑하는 정예전함 이부키. 여기에 건조된 예배당도 또한 신이 앉는 절대불가침의 이동요새화 했다. 주는 그 안쪽에 실재한다. 몽계의 최고위에 걸터앉은 현인신으로서, 그는 발을 들인 내방자를 환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착각해서는 안된다. 여기 존재하는 자는 모두 외도. 종별은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공통하여 인도로부터 동떨어진 마성의 성질을 품고 있다. 악역비도의 역십자와 모든 것을 남김없이 태우는 하늘의 작광. 경건한 외경 따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은 신역이 일그러지도록 조용히 언령을 교환하고 있다.
「그럼, 슬슬 꿈도 가경이구나. 세-지」
현상 유일무이의 몽계 공략자로서 아마카스 마사히코는 친구에게 말을 건다. 세이쥬로가 한단법을 확립한 때부터의 교우인만큼 음색에 적의는 없다. 다만 대기가 삐걱거릴 정도의 압력이 자연스레 뿜어지고 있을 뿐이다. 농담으로 보이는 잡담마저 내리쬐는 태양처럼 뜨거운 것은 그만큼 이 남자가 어떤 존재인지 한눈에 인상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평등한 재정자이며, 그렇기에 모든 국면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자신의 판단기준에 따라 어떤 공적이든 공정한 평가를 내린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반역을 앞에 두고도 마찬가지. 눈앞의 친구가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알고 있음에도 이같은 우의를 확인하고 있다. 자신의 권족으로부터 퍼부어지는 살의를 앞에 두고 조금도 동요하지 않으면서 담소마저 하고 있는 시말이다. 오히려 세이쥬로의 반골심을 기쁘다고 생각하며 마음에 든다고 느끼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각오, 기개. 바로 정면으로부터 부딪혀오는 적개심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아마카스는 확인하듯이 재차 상황을 말했다.
「타츠미야의 편달을 받고 너의 아들도 그 나름대로 다듬어진 듯 하군. 그래서, 어느쪽으로 할지는 정했나? 완성을 거치는 8층인가 미완성인 5층인가. 나로서는 좀 더 그들의 분투를 귀여워하고 싶다고 바라고 있지만. 넌 아마 다를테지?」
「물론이다. 이대로 5층에서 쟁취한다」
짧은 단언에 세이쥬로의 결의를 그대로 엿볼 수 있다. 찬탈의 시기를 5층으로 할지 8층으로 할지 어느쪽이든 메리트·디메리트가 존재하겠지만, 이 남자에게 있어서 눈앞의 호기를 놓치는 선택은 없겠지. 그만큼 노생의 자격에 집착하고 있다.
「이 이상 저걸 놔둬도 맛은 없어. 그렇다면 네놈의 목걸이에 매달린 현상 따위 일각이라도 빨리 불식함이 도리일 터다. 쓸데없는 시행을 거듭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눈에 보이고 있으니까 말이다. 한단의 공략 정도 내게 있어서 애장난이나 마찬가지다. 뺏으면 바로 결판이 난다. 그렇다면 이 기회는 결코 놓치지 않아. 난 이곳에서 노생이 된다」
그 결과로서, 연명 이외에 무엇을 완수할 작정인가. 세이쥬로가 방출하는 흉조는 숨기는 것조차 일절 하지 않고 상대에게 진의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카스에게 있어 불이익하며 어떤 득도 생기지 않는 결의지만…… 유일하게 그의 미감과는 합치하고 있었다. 알면 알수록 타인에게 불쾌감만을 느끼게 하는 이 귀축을 앞에 두고, 그런데도 솟구치는 존경을 아마카스 마사히코는 멈출 수 없다. 아아, 이러니까 흥이 돋는다. 세이쥬로는 싫어하겠지만 아마카스가 품는 신뢰는 진짜다. 만뢰의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로 왕년의 친구를 용사로서 찬양하고 있다.
「세-지이이이, 그건 좀 의리가 없지 않아?」
그리고 희색이 돋는 주인에게 호응하듯이 바닥 일면에 그림자가 퍼졌다. 꿈틀거리며 모여서, 빛이 진해지면 진해질수록 떠올라오는 어둠의 승성. 악덕을 가득 채운 사람의 그림자가 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상냥한 어조로 입체적 형태를 만든다. 외도의 사이라도 우정은 존재하는가, 실체를 이룬 신노는 평소와 어울리지 않는 성실한 듯한 태도를 보인다.
「그렇게 급하게 독립기업하지 않아도 꿈은 빼앗기지 않아. 우리들의 주인은 자비심이 깊다고. 오히려 현상유지를 하는 편이 죽는 위험하고는 무연일텐데. 아들로부터 쟁취한 자격, 그게 정말로 우리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물건일까나? 걸어보는 건 좋지만 내가 보기에도 그건 신중한 너답지 않아. 도박은 취향이 아니잖아. 뭣보다, 그토록 살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지 않았냐고. 두 토끼를 쫒다가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해, 이상한 고집으로 일부러 몸을 괴롭히는 것도 어떨까 싶네. 뭐 소원이 안 이루어진 걸로 배가 빵빵한 내가 말하긴 뭣하지만 말야」
「파리가, 닥치고 있어」
늘어놓은 문제점 갖가지를 알고 있다고 세이쥬로는 딱 잘라버린다. 실제로 그것들은 진실이었지만, 그렇기에 초지를 바꾸는 것 따위 그에게 결코 있을 수 없다.
「감언을 하겠다면 다른곳에서 해라. 아마카스에게 연결된 같은 타타리, 사룡하고나 노는 게 좋을거다」
「그니까 그게 싫단 말이지~」
아마카스의 권속으로서도, 세이쥬로와의 우의로서도 아니고, 그저 자신에게 있어서 시시하기 때문에 만류했을 뿐. 신노는 어깨를 움츠리면서 싱겁게 진심을 폭로하면서도 기가 죽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모처럼의 이야기 상대가 없게 돼. 악마에게 있어서 그건 사활 문제야. 코우가의 공주님도 싫지 않지만 말이지, 옥신각신 너무 많아서 이제 와선 귀찮아. 쿠보는 이미 뒤집혀 있으니 이야기가 되는 건 너랑 주인 두명 뿐. 누군가 여기로 끌어들이려 해도 제5층에서 멋대로 할만큼 나도 간이 굵진 않아」
역십자가 이 순간을 위해 쌓아올린 수많은 계책, 집념. 그걸 생각하면 신노도 무리하게 개입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 딱히 상대를 생각해서 배려는 아니고 일단 현실적인 문제로 세이쥬로와 정면으로 격돌하는 일이 되니까다. 그 전개는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고, 파산이 되면 기뻐하는 것은 애당초 전진관 정도일 것이다. 그렇게 알고 있기 때문에 악마는 양손을 벌려 친구의 마음을 만류하고 있다. 기특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어디까지나 뻔뻔스럽게.
「이봐 세-지, 우리들은 친구잖아? 좀 더 함께 악역처럼 이거저거 하자앙. 그 날의 뜨거운 우정은 대체 어디로 간거니」
같이 배덕을 쌓아올리자는 악마의 소리. 그 빗나간 애정에 반응한 것은 세이쥬로가 아니고 아마카스의 쓴웃음이었다.
「너무 만류하지 말고 알아줘라. 내 권속이라는 입장 따위 세-지에겐 도무지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아닐거다. 게다가 상황의 전말을 부감해보면 이건 나의 행취일터다. 직접 확립한 한단법을 뒤에서 빼앗아버린 모양이 되니까 말이다. 의리가 없다고 한다면 이쪽이 먼저겠지. 그러니 이것은 어느 의미, 본래의 흐름으로 되돌리는 형태가 된다. 그렇겠지」
지적에 대해 반응은 없었지만 대체로 그것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적어도 히이라기 세이쥬로라는 남자에게는. 심혈을 기울여 한단법을 구축했는데도 비오를 얻은 것은 발안자가 아니고 눈 앞의 피험자라는 시말이다. 말하자면 빌려 준 가옥을 그대로 강탈 당한거나 마찬가지. 결코 용서할 수 있을리 없다. 그래, 수정이 필요하다. 이상해진 도리는 바로잡지 않으면 안될 터, 그 때문에 해야할 일은 남자의 안에서 정해져 있다.
「자신이 고안한 한단법을 써서 노생이 된다. 그리고 이어서―― 날 죽이고 유일이 된다. 그것이 너에게 있어서 올바른 결과, 그 날 그렇게 될 것이라 바래왔던 미래겠지?」
「말할 필요도 없다」
즉 긍정이라고 말하면서 세이쥬로는 사나운 극악의 악의를 드러낸다. 그것은 농밀한 죽음의 기색. 타인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영역의 고통을 견디고 더욱 살아온 남자이므로 가질 수 있는 지옥의 원한이자 선망이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불안하게 된다. 보통 사람이라면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다.
「네놈의 존재 그 자체가 내게 있어서 해악이다. 이 굴욕은 반드시 돌려준다. 기다려라, 금방 죽여주겠어」
「라고 선전포고를 하고 있습니다만. 괜찮나요? 한다면 한다구요 그는」
「상관없어. 오히려 그렇기 때문이다 친우. 난 널 높이 사고 있다. 전인류를 적으로 돌려서라도 날 통해 삶을 잡으려하는 그 기개. 우회따위 조금도 생각지 않고 모든 것을 분쇄해서 직진하려 하는 독존. 이걸 용기라 하지 않으면 뭐라 하는 것이냐. 삐뚤어져 있겠지. 길을 벗어나 있겠지.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이어가려고 시행착오를 하고, 발버둥 치는 너의 강함은 만상에 있어서도 한층 더 눈에 띄게 빛나고 있다――칠흑으로. 색채의 종별을 난 묻지 않는다. 극론, 모든 생명은 단지 살아가기 위해 태어나니까」
백이든지 흑이든지 어느 쪽이든 빛을 발하면 매료되고 깊이 감동하게 되는 것이 있다. 요점은 절대치의 문제다. 아마카스는 어디까지나 그 강함과 굳센 의지에 매료되고 있다. 우선, 세이쥬로의 진실은 일어나는 것도 할 수 없는 중병환자다. 노생과 연결되지 않으면 호흡 한번조차 할 기력이 없는 그를 앞에 두고, 살려는 소원을 버리라는 등의 철면피인 말을 어찌 할 수 있겠는가. 살고싶다, 살고싶다, 살고싶다, 살고싶다―― 무엇를 저질러서라도, 어떤 악행에 손을 대서라도. 신이나 악마라고 해도 그 기도만은 더럽힐 수 없다. 1초라도 길게 살겠다는 당연한 생존욕구...... 그것만큼은 삼라만상에 부과된 명제이며 누구에게도 부정될 수 없는 대전제니까.
그리고 하나 더, 아마카스가 세이쥬로를 긍정하고 있는 요인으로 타인의 저항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 있다. 이 남자는 외도지만 타인의 도전 그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언제나 자신이 이긴다는 오만불손한 인식이 근저에 있지만, 겁이 나서 격돌을 회피하는 일만큼은 한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것도 각오의 일종이라 할 것이다. 자신은 강하고, 어리석은 놈들은 대체로 별 볼일 없는 공물의 무리. 그런 정념조차 여기까지 단련되면 빛을 발하고, 훌륭한 강함이다. 그 집념이 있기 때문이야말로 어떤 형태이든 지금도 이렇게 살아있다. 모든 죽을 병에 침식당하면서 삶을 잡아, 더 높은 곳에 오르려 날뛰는 히이라기 세이쥬로라는 한명의 남자…… 그의 역사에 아마카스는 감동을 금할 수 없다. 그것은 정상인의 몸으로는 얻을 수 없는 암흑의 아름다움이다. 지금도 과시되고 있는 파멸의 빛에 대해서 최고의 찬사를 입에 담는다.
「그러므로 세-지, 난 널 존경한다」
「아아. 그리고 난, 너가 부럽다. 그 빛을 한조각이 될 때까지 이 손으로 떼어 잡아주마」
혈육의 조각도 남기지 않고, 반드시 그럴 작정이라고 세이쥬로는 단언한다. 왜냐하면 그는 철두철미 귀축이니까. 그것을 긍지로 삼고 있기 때문에. 사랑을 안다. 정도 안다. 사람의 성질에 속하는 모든 것을, 자신은 빠짐없이 알고 있다. 그러니 물론, 나 자신의 사악함도 누구보다 이해. 난 내가 원하는대로, 있는 그대로의 귀축으로 있을 뿐. 거기에 후회따위 한조각도 없다. 따라서 이 세상은 삼라만상, 자기를 빛내는 주춧돌이다. 자, 너희들의 빛을 내놔라. 나는 어떻게든, 그것이 부러워서 어쩔 수가 없는거다.
광기를 품은 눈빛은 무거운 병마에 침식당하고 있다. 엿볼 수 있는 나락의 깊이는, 그대로 남자가 느껴왔던 절망의 심도다. 상식이라는 기준에서 일탈한 세상에 풀려나서는 안되는 악의, 그렇기 때문이야말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아마카스는 믿고 있다. 영혼의 골수마저 파탄하고 있기 때문에 이 남자는 강하다고 재차 느끼면서 그 길을 응원한다.
「부모와 자식, 어느 쪽이 노생이라 할지라도 상관 안하마. 강고한 마음을 가진 쪽이 자격을 품으면 된다. 두 번째의 부자싸움이다. 즐겁게 감상하도록 하마」
그 결과, 최대의 적으로서 반역해도 상관 없다. 아니, 그렇기 때문이야말로 우리 낙원의 거주자다.
그런, 다른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친애를 받으면서 세이쥬로는 어디까지나 적대의 의사를 보이며 발을 돌린다.
「힘내라, 힘내라, 세~지~! 자, 절망까지 바로 앞이다. 다가온다고, 너를 사랑하는 구제자가. 거기서 특출의 혼돈을 보여줘」
계시같은 불길한 신노의 성원이 예배당에 울려퍼진다. 세이쥬로는 대답하지 않는다.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퇴실하는 역십자의 등을 비추고 있다.
이번엔 짧은 걸로. 사실 세-지의 인생을 보여주기엔 뒤에 나오는 그의 수기가 더 적당합니다만 길어서 포기하고 에리코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지로 대신. 여기서는 안나오지만 둘이 정을 나눈 후(그니까 섹스 하고나서) 뭔가 착각하고 있는 듯한 에리코를 보니 빡쳐서 뺨다구를 후려갈겼다는 일화가 좀 재밌었습니다.
'마음은 물건 따위가 아니다'라는 말과 '평범한 가정을 가지고 싶다'는 에리코의 소원은 8층 클리어 후 세-지와의 대화에서 다시 나오죠. 그리고 만선진에서 결국 성취. 신좌만상 때도 그랬지만 불행한 결말이 나는 캐러들의 관계를 후속작이나 애프터 등에서 훈훈한 결말로 완결내곤 합니다.
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가정이 약했다.
거기에 이유가 있다고 하면 있고, 없다고 하면 없다. 다른 집보다 다소 복잡한 집이었음은 확실하지만 그렇다 해서 특별히 이상하다 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내 어머니는 소위 후처로서 난 그 의붓자식이었다. 즉 아버지와는 피가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그 후에 남동생이나 여동생이 태어나지도 않았으니까 혈연이라고 하는 인연을 일가에서 공유하는 일은 끝까지 할 수 없었다. 정말로 그것뿐. 말했듯이 보통과는 다르지만 과장해서 생각할 정도의 일도 아닌, 가끔 있는 이야기.
아버지에게 미움 받거나 무언가 당한 일도 없었다. 딸로서 귀여워 해주었고 과도하게 응석부리게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매우 당연한 집이었을 것이다. 따로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모르고, 따라서 가르쳐 줄 필요도 없다. 어쩌면 그것이 문제였을까 지금은 생각한다. 가정의 사정 따위 선전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 나 자신도 뭔가 불만이라 할 것도 없었으니까 누구에게도 이 일은 말하지 않았다. 숨길 작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버린 것은 사실이 사실로서…… 마치 우리집은 부끄러운 집이라고, 그런 공기가 가족 사이에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거짓말도 계속 하면 진실이 된다든지 어떤 의미로 긍정적인 말이 있지만, 그것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으로 가족 전원이 주위에 진실을 애기하는 타이밍이 빗나가 버렸다. 에리코씨의 아버지는 멋진 사람이네. 따님은 사랑스럽네요. 남편분과 눈매가 딱. 등등등 여러 가지. 감사합니다. 그렇습니까. 예에, 자주 듣습니다. 나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거짓말 한 적 따위 없지만 나날이 오해는 쌓여가고, 아뇨 다르답니다 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은 아니게 되어버렸다.
지친다. 매우. 굉장히 곤란하다. 대외적으로는 계속 밝게 대응하고 있는 반면에, 집안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더는 참을 수 없는 공기로 가득 차 갔다. 공범자들. 이 가장 가까운 표현이겠지. 본래 품을 필요가 없는 죄악감이라든지 수치라든지, 누군가 참지 못하고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닐지 하는 두려움이라든지…… 서로 견제하고, 서로 지키는 듯한 나날이 계속되어, 어느덧 난 가족에 약하게 되어 있었다.
특히 어머니는 궁지에 몰린 듯하여 매우 아이를 가지고 싶어했다. 그게 이뤄지면 일발 역전. 자기들은 따질 것도 없이 누구에게도 부끄러울 일 없는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도리도 알고 기분도 안다. 그렇지만 그때 이미 적당한 나이가 되었던 나로서는 이제 와서 부모의 그런 점은 보고 싶지 않았고 어머니도 이미 적령기가 지났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꽤나 가망이 없는 것이었고 통속적으로도 그 나이에 아이를 만든다니 체면이 안 섰다. 집의 수치가 늘어난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 가족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 점은 자기혐오가 치밀었지만, 실제로 싫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난 정당한 가족이라는 것을 동경했다. 어머니가 할 수 없다면 내가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이 정말로 사소한 일로 이상해진 자신의 집을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을 터. 원래 사랑해야 할 사람들인 부모님을. 그런 그들을 꺼림칙하다고 생각해버린 속죄로. 내가 어떻게든 한다. 해보겠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난 그와 만났다
히이라기 세이쥬로…… 그는 극단적인 남성이었다. 겉치레로도 인격자라고 할 수 없는, 오히려 최악의 범죄자조차 두려움을 느낄 만한 위험인물. 알고 있다. 알고 있고 느끼고 있다. 나처럼 특별할 것도 없는 여자가 보기에도 그는 즉석에서 간파할 수 있을 정도의 파탄한 인간이었다. 가까워져서도 안되고 관련돼도 안된다. 저건 내가 요구하는 정당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농담도 안 될 정도로 동떨어져 있다. 그렇지만. 아아 그렇지만, 그런데도 난……
「너가 필요하다. 내 도움이 되는 것이 좋을거다」
그의 도움이 되고 싶다고 강하게 생각했다. 이, 눈물이 날 정도로 끝나있는 남자를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너져 버려. 오만하고 탐욕스럽고 단지 혼자서 전세계와 싸울 수 있을 것 같은 자부의 남성이면서, 모래성처럼 덧없이 약해. 그를 알면서도 무시한다는 행동은, 정상이길 바라는 인간일수록 불가능하다고 알아버렸다.
사랑받지 않는다. 알고 있다. 필요하다고 말해줬다. 하지만 둘도 없음은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것은 자신뿐으로, 그 외에는 모두 마찬가지다. 히이라기 세이쥬로라는 남성은 모든 것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모두 마찬가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도구. 자신이 존재하기 위한 먹이. 옷이나 음식과 똑같이 없으면 안되지만 그렇기에 특별함 따위 한조각도 없다. 거기에 감사, 공경 같은 걸 하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몸이 탐내고, 이몸에게 쓰이기 위해서만 준비되어 있는 것이니까 단지 권리를 행사할 뿐. 뭐가 나쁘지? 그것이 히이라기 세이쥬로라는 남성의 인생에 있어 기본칙.
마치 신님같은 사람이다. 소나 돼지는 사람에게 먹혀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니까, 그것은 당연한 일이자 자명한 이치. 그렇게 믿고 있는 그의 앞에서는 어떤 도덕도 피상적으로 된다. 따라서 그가 그때 내게 요구했던 것은 말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내 아이를 낳아라 에리코」
의미는 없다고 알고 있다.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난 고집이 생기고, 사랑이 있고, 정이 있고 구애가 있어…… 가족을 원한다는 소원이 있어서.
「네. 당신, 기꺼이」
그것이 하나의 투쟁이 되었다. 내가 당신의 아내가 된다. 당신의 아이를 낳고,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내 아이가 반드시 당신을……
그와 몸을 섞고, 정을 받아, 대신 빼앗긴 것은 그런 나. 어리석다든지 추악함이라든지 분함이라든지 천박함이라든지…… 혹은 사랑으로 일괄할 수 있는 히이라기 에리코. 그러한 부분. 그의 손안에 있는 에리코는, 그리하여 사랑 밖에 몰라서…… 사랑의 의인화니까 분명 광기의 여자겠지. 어째서 저런 남자를 사랑하고 있냐고 백만번 물어도 대답은 마찬가지. 그치만 좋아하는걸. 그것밖에 말하지 않는다. 그것밖에 없으니까.
교환의 타이밍 자체는 분명 좀 더 뒤겠지만. 진정한 의미로 빼앗긴 것은 이때. 이 악몽의 발단이 된 지금 이 시대.
요시야, 요시야…… 내 아가, 사랑하는 아이. 폐를 끼쳐 미안해요. 내 고집에 말려들게 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이것만은 믿어줬으면 해. 나는 널 사랑하고 있답니다. 사랑이라는 개념을 자신의 안에서 빼앗긴 지금도 그것만은 강하게 말할 수 있어. 왜냐면 그것은 반드시 무한히 솟아오르는 것이니까. 그 사람은 그걸 알지 못해. 사람의 기분도 영혼도, 훔치고 이용하면서, 쓰고 나면 버리는 도구로밖에 보지 않아.
그러니 너가 가르쳐주렴. 마음은 물건 따위가 아니라는 걸. 그게 내 싸움의 진.[각주:1] 무운을 빌어요, 사랑하는 요시야.
戦の真(イクサのマコト) 전신관 시리즈에서 자신의 꿈의 핵심에 해당하는 말. 신좌만상 시리즈로 친다면 갈망와 일치. 싸움의 진실, 이쿠사노 마코토 등등 뭘로 번역할까 고민했지만 일단 싸움의 진으로. [본문으로]
마지막에 누가 성찬(요시야의 피)을 마시냐에 따라 분기가 갈립니다. 미즈키 루트는 ㅋ...
주인공들이 압도적으로 강력한 적한테 탈탈 털리면서 절망을 맛보는 상황을 옛날부터 좋아했습니다. 마사다도 적캐러들 쓰는데 환장한 양반 아니랄까봐 그런 장면을 잘만들구요. 특히 카카카에서 동정군이 모레이와 아쿠로한테 털리는 씬은 굉장했죠. 이 파트 앞부분에서 키라한테 탈탈 털리는 장면도 카카카만큼은 아니어도 그러한 씬인데 길어서 따로 번역은 안합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을 탈탈 털던 키라가 역으로 쿠보한테 와장창 탈탈탈탈탈 털리는 분위기가 꽤 좋았습니다. 아마도 키라의 처음이자 마지막 리즈시절...
아마카스가 요시야 앞에 등장함으로써 지금까지의 구도가 7세력의 배틀로얄틱한 대립이 아닌 무언가 다른 구도였음을 눈치챕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정말로 7세력의 배틀로얄 구조이길 원했습니다. 그래야 적캐러들끼리의 전투를 볼 수 있거든요. 이런 아쉬운 점을 캐치했는지 만선진에서 5파전을 보여줌으로써 조금은 가려운 구석을 긁어줍니다.
여기서 쿠보가 등판할 때 작중에서 처음으로 파라이조 브금이 쓰입니다. 원래는 아마카스 브금이지만 여기서의 임팩트 덕분에 쿠보 브금이라는 인상이 더 강하죠. 아마카스는 오히려 아라야가 전용브금 같고.
「――――――」
결과는 명중. 틀림없이 뼈를 으깨고 혹은 가르고, 그 손느낌은 거짓이 아닌 증거로서 분수처럼 피가 뿜어나온다. 그렇다고 하는데도, 아아―― 아직도 이 이상의 악몽이 있는건가.
「효과가 없네. 그정도냐 여호수아. 죽여죽여. 남자도 여자도 젖먹이도…… 이봐 누구를 죽인다는거냐 그런 꼬라지로. 역시 너 따위는 결국 역십자의 도구다」
상처가―― 두개골을 가르고 뇌가 날아가, 몸을 양단하고 내장이 분출하여 흘러넘칠 정도의 치명상이 눈 깜빡할 찰나에 복원해 간다. 눈같은 그 피부에는 이미 얼룩 한 개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럴수가……」
받는 심리데미지를 생각하면 전혀 효과가 없는 편이 차라리 좋았다. 이녀석의 갑옷을 돌파하면 어떻게든 될거라고, 비록 정신이 멀어질 거 같은 작업이라도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 터. 하지만 이건, 그런 위안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불사신이냐 네놈……」
효과가 있는데도 쓰러뜨릴 수 없는, 뇌나 심장이 파괴되어도 부활하는 마적이기까지 한 순법성능. 아키라의 그것을 아득히 상회하는 그 절기는 치유라는 신성한 꿈조차 그로테스크한 것으로 바꿨다.
「딱히 그런 수상쩍은 것에 흥미는 없다만. 네놈의 절망한 얼굴을 보니 뭐 묵은 체증은 내렸네」
그리고, 세 번째의 그것이 온다. 원리불명의 압괴능력―― 나와 세라의 신체는 걸레라도 짜듯이 비틀어졌다.
「끄아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악!」
「후후후,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피로 물들어 암전해가는 의식 속에서 인수의 큰 웃음에 고막이 후벼파지고 뇌가 흔들린다. 난 죽는건가? 그렇지만 어째서――
「――――――」
지금 이처럼 심장은 신비한 고동을 울리기 시작하는 건가. 이래가지고는 마치…… 그래, 마치……
「히이, 라기, 군……?」
나라고 하는 인간이, 실은 이 순간까지……
「앗, 끄―――, 아아아아아앗! 요, 시야, 요시야, 요시야아아앗!」
절규하는 에리코――의 인형인지 실물인지. 판별은 변함없이 불가능하지만 어찌 됐든 그 괴로워하는 모습은 지금까지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쿠보에게 계속 파괴되어 온 지옥조차 이것에 비하면 아무 의미도 없다는 듯이.
뭐지, 내 신체가 사라져간다. 지금 이 순간도 점멸을 반복하고 있는 전신은 그때마다 확실히 엷어지고…… 아니, 그게 아니라 줄어들고, 있다?
「요시, 야……」
「요시야군……」
「히이라기……」
「너 대체……」
「어떻, 게 된, 거야……」
내 몸에 일어난 현상은 너무 이해불가 해서 뭐가 뭔지 몰랐다. 죽음에 임박한 아키라들까지 자신의 일보다 내 이상에 눈길을 빼앗겼다.
「에리코씨, 부탁해…… 히이라기군을, 도와줘」
「――――――」
그러나 그 이름, 어머니를 의식한 순간에 이치를 막론하고 수수께끼는 풀렸다. 확신을 얻었다고 해도 좋다.
「그런가, 이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고 있다. 아직 이 세상에 내가 태어나기 이전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무렵으로. 그것이 어째서 이런 때 이런 식으로 발생했는지 조금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틀림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기억이 있다. 그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일지도 모른다.
「요시야, 요시야…… 내 아가. 소중한 아이」
모친 속에서 안겨 있던 바다의 기억. 그 따스함, 편안함, 그리움…… 오해가 들어갈 여지는 없었다. 나는 지금 확실히,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오고 있다.
「…………」
그러나 그 자체는 이 장소에 있어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이었다. 원인이 무엇이든 움직일 수 없는 것에 변함은 없고 몇초 안에 당할 것이다. 마지막 일격에 저항 할 수단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것은 언제까지고 내 위에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내려온 것은 망연한 키라의 소리로.
폭풍과 구름이 소용돌이 치는 납빛의 하늘이 세로로 쩌억 갈라져간다. 그 슬릿은 미끈미끈 비춰 보여 마치 여성의 음부같은 추잡함을 보이면서 열리며, 고정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눈……?」
하늘에 그려지며 출현한 거대하기 짝이 없는 괴물의 눈동자. 그 위용으로부터 뿌려지는 파동은 병들고 문드러지며 곪고, 썩은 냄새를 풍겨, 저것이 재앙과 저주로 가득 찬 것이라고 고하고 있다.
「나키리, 쿠보……!」
그리고 포학은 도끼라도 쪼갤 것 같은 피로 물든 광소로부터 시작됐다.
「갸갸갸갸갸」 「캬아아캿캿캿캬아아아―――!」
하늘에서 운석처럼 내려온 것은 족히 백은 넘는 부패한 팔이었다. 그 모두가 차를 움켜잡을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하고, 검프루게 변색한 피부는 격돌과 동시에 찌부러지며 들러붙은 악취와 함께 마구 휘날린다. 처참하고 구역질이 나는 광경이었다. 왜냐하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코우가의 군인은 반이상이 압살되었으니까.
「크,으윽―― 얕보지마라 천박한 괴물 주제에에!」
하지만, 역시 키라는 격이 달랐다. 때려잡아오는 거완을 정면으로 받아서 역으로 찌부러트리고, 격앙과 함께 포효한다.
「해치워버리겠어. 네놈도, 그리고 아마카스도―― 무릎을 꿇어라 천한놈아아!」
그 순간 하늘의 쿠보에게 날린 것은 틀림없는 그것이었다. 우리를 순식간에 박살낸 수수께끼의 공격―― 게다가 지금의 위력은 방금 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전신전령, 놀이가 아닌. 키라의 진심을 최대출력으로 주입한 필살이다. 폭굉하는 파괴의 힘에 의한 반작용으로 본인을 중심으로 대지가 크레이터처럼 함몰한다.
「맛나는 꿈을 내놔」 「그눈 내게 주시와요」
하지만, 쿠보에게는 전혀 아무 효과도 없었다. 일순간만 눈동자의 주위가 흔들린 것처럼 보인 후……
「멸·멸·멸·멸」 「망·망·마아앙!」
키라가 던진 그 힘을 몇배로 돌려보냈다.
「끄아아아아악!」
눈의 요정같은 지체가 무너진다. 뒤틀리고, 찌부러지고 잘게 썰려, 쓰레기처럼 유린된다. 만약 우리들이 저것을 받으면 10회 이상은 죽었음이 틀림없다.
「크, 오……오오오」
그런 폭위에 직격되고도 살아있다는 것은 행복인지 불행인지. 아니, 확실히 불행일 것이다. 키라의 도를 벗어난 회복력이 이녀석에게 쓰러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떤 생물이든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영역의 압괴를 받으면서도 아직 의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복원이 시작된다. 다만 그 재생도 눈에 보이게 완만했다. 부상의 규모가 너무 큰지 그렇지 않으면 가해자의 질에 관련된 것인지 불명했지만 어느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아파? 아파아? 괴로워? 슬퍼어?」
키라는 이길 수 없다. 즉사를 피할 수 있을 만큼의 강함을 가졌던 것이 화가 되어 이대로 희롱되고 살해당할 것이다.
「뭣――, 그만둬 너희들! 가지마. 물러나라!」
그런 주인을 지키기 위해서인가, 쌍두의 검은 늑대가 쿠보에게 덤벼들지만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오오무카데가, 야마이누가, 백골화 된 말이, 이무기가―― 계속 이어서 화쇄류처럼 키라의 코우가군과 검은 늑대를 목표로 해서 연속한다. 주위는 지옥도화 됐다. 그토록 위협을 자랑한 강철의 군세가 유린되어 가는 모습은 물론, 거완은 아군이어야 할 백귀야행조차 주저없이 박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놈, 이놈이놈이놈이노옴―――!」
끝나지 않는 학살 속에서 고군분투 하는 키라도 또한 잘개잘개 썰려간다. 눈알이 후벼파지고 혀를 뽑히고, 귀를 떼어내지고 손발은 말단부터 잘개 썰려간다. 거완으로부터 도망치는 백귀야행은 조금이라도 공고한 장소에 몸을 숨기려는지 키라의 전신, 구멍이라고 하는 구멍 모두에 쇄도해서 내부에 기어들어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눈에, 귀에, 코에, 입에…… 음문, 항문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그 외 온갖 상처를 밀어 넓히고 범하고, 간하고, 침범하고, 도려낸다. 쿠보에게 있어 죽어가는 우리들의 존재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것인가. 이만큼 파괴를 계속하면서도 이쪽은 예외적으로 무시되고 있지만, 그걸 기뻐할 수는 없었다.
「커, 헉…… 네놈, 용서못해! 용서못한다아!」
왜냐면 검은 늑대도 , 코우가군도―― 구석에서 학살 당하고 자신도 절망적인 상황이면서 분노로 울부짖는 키라의 모습이 아팠던 것이다. 우리의 궁상은 이 여자에 의한 것이고, 그 이상 없을 정도로 적이었지만 그 비분에 가부 없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뭣보다, 이 쿠보라는 녀석은 너무 위험했다. 비록 어떤 기적이 있어서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해도――
「온·코로코로·센다리 마토기 소와카――」 「육산을 멸해라 멸·멸·멸·멸」 「망·망·망」
이녀석이 존재하는 한 희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백귀공망―― 이것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모든 굴레를 도외시 하고서라도 전세력이 손을 잡는 것 이외에 없다고 알 수 있다. 아니, 그래도 저항할 수 있을 것인가. 나도 사람. 너도 사람. 그 묶음에 쿠보만은 들어맞지 않는다. 싸움의 진이 통하지 않는다. 이것은 천재지변―― 다만 도를 벗어난 포악으로서 사람의 지혜가 미치지 않는 무언가이다.
「아아, 뭔가 보지 않는 동안에 엉멍진창이 됐네에」
「연회가 달아올랐다, 라는 건가」
「――――――큭」
어느새 나타난 원수였지만, 그러나 우리는 무엇도 할 수 없고.
「정말이지, 해버렸네요 두분. 통한스러워요」
「그기야 뭐 어쩔 수 없는 걸로. 그것보다 요거, 우짤기고」
유리카도 단 카루마도…… 적어도 내게는 예기치 않게 모든 세력이 다 모인 상황이 구현했음에도 관계없이.
「만·만제로쿠·만자라쿠」 「사방의 히쿠미를 묶은 곳은,더러운 땅으로 미소기에 안좋을 터」[각주:3]
「끄아아아아아악―――!」
방금 전에 떠올린 전세력에 의한 동맹체결…… 그런 것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이해했다. 쿠보가 너무 강하니까. 신노나 세이쥬로가 너무나 사악하니까. 이유는 그런 게 아니다.
「안메이조, 글로오리아스…… 어서 오십시오 우리들의 꿈에. 내 주인이여」
최후의 쿠보의 일격으로 티끌이 될 때까지 분쇄돼고 분해되는 키라의 전신. 폭풍에 감겨 잿빛으로 소용돌이 치는 그 속에서, 젊은 군복의 남자가 나타났다. 이녀석은―― 그래, 모든 원흉은 이남자……
「세-지, 너의 아들은 재미있군. 유리카, 그리고 카루마도 한단에서 만나는 것은 처음일까나」
애당초 이 세계의 상관도를 난 무엇을 근거로 단정하고 있었나? 자신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머리로 생각하고 있었던가? 틀렸다…… 우리는 지금의 지금까지 무엇 하나 진실에 닿지 않았다.
「별고 없으신 거 같네요 아마카스대위」
「그보다 나 돌아가도 되는고」
누구도, 그도, 여지없이 모두…… 동맹이든 대립이든 모두 촌극이다. 사상의 중심에는 언제 어느 때든 이 남자. 그 외에는 모두 이 녀석의 주위를 돌고 있는 위성에 지나지 않았다고 이해했다.
「그런 말 마라 카루마, 흥이 식는다. 거기다 이봐, 일단 격식이라는 게 있잖나」
「커,헉……」
남자에게 옷깃을 잡혀 그대로 공중에 매달린다. 신체는 여전히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온 채로 저항은 일절 할 수 없었다.
「자, 누가 하겠나? 지원을 모집하지. 내가 허락하마. 이 성찬을 마시는 건 누구인가――」
唵 呼嚧呼嚧 戰馱利 摩橙祇 娑婆訶 : 약사여래 소진언으로 모든 재난을 없애주고 수명을 연장해주는 진언. 물론 이런 뜻이라고는 쿠보의 분위기로 보건데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음. [본문으로]
六算祓エヤ滅·滅·滅·滅·亡·亡·亡ォォォ! : 메츠메츠메츠보보보! 라고 음으로 쓸려다가 뜻대로 씀. [본문으로]
四方のヒクミを結ぶトコロは 気枯地にてミソギに不良はず :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땅을 弥盛地, 나빠지는 땅을 気枯地라고 했다. 일본의 고대문명인 카타카무나문명에서 근거.
만제로쿠 만자라쿠는 지진이 날 때 외던 주술 [본문으로]
소바몬 던지기. 체험판2 마지막 씬입니다. 상상 이상으로 외도를 보여주는 세지와 쿠보의 쇼킹함에 가장 좋아하는 씬 중 하나이고 마사다 본인도 꽤 좋아하는 파트라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번역질에 동영상까지 삽입하고 꽤 공들였음 엣헴.
원래 미친놈들 만들어내는 능력이 서브컬쳐 전반에 걸쳐 최고라고 생각되는 마사다지만 이 파트를 처음 접했을 땐 정말 혀를 내둘렀습니다. 쿠보의 괴기스러움에 빤쓰 한번 갈아입고, 이전까지는 그냥 흔한 싸이코인줄 알았던 세지가 상식 밖의 외도였음을 보고 또 한번 빤쓰를 갈아입었답니다!
마사다의 디렉터 능력에 대해서는 아직 최고라 하기 어렵지만 여기서의 연출력은 정말 좋았습니다. 아마 마사다겜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뛰어난 연출을 자랑하는 곳이겠네요.
'난 네가 부럽다'를 항상 입에 달고 다니는 세지가 작중 최강으로 모두에게 인정받는 쿠보에게만은 부럽지 않다는 하는 곳도 좋았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는 세지의 인생관이 정확히 파악 안되기 때문에 클리어하고 나서 다시 돌아보면 그 뜻을 알 수 있죠.
쿠보는 여자목소리와 남자목소리가 번갈아가며 나오기 때문에 폰트질을 좀 해서 구분해 봤습니다만 티스토리 기본폰트가 많은 편이 아니라 별 의미 없었을지도. 두 목소리가 함께 나올 때는 검정배경을 삽입함.
장소는 쓰루가오카 하치만궁. 그의 아들과 그 동료들에게 있어서 모든 의미로 잊혀지지 않을 인연의 땅일 것이며 행동의 기점으로도 정해놓은 신역은, 그러나 기존의 어떤 때와도 양상을 달리하고 있다. 현대도, 4층(기르갈)도 아니고, 5층(가자)도 6층(기베온)일리도 없다. 7층(하조르)이라고 신노가 말한 층이며 지도상의 좌표는 같아도 존재하는 시간축이 빗나가고 있다. 실질상으로 최심층…… 그들, 몽계에서 싸우고 있는 자들이 예외 없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금단의 땅이 거기였다.
요풍이 휘몰아치는 경내에서 단 혼자 서있는 세이쥬로. 표정은 험한 긴장을 품으며, 그마저도 여유를 잃게 하는 불길함이 일대를 전부 가리면서 비등하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의미를 가지는지 이 천재학도는 오해하지 않는다. 어중간한 땅이랑은 급이 다르다. 장소가 장소, 농담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하치만이란 오진천황. 즉 황실의 조령이며 아마테라스의 혈통을 잇는 그야말로 신도상의 귀종이다. 거기다 무가의 수호신도 있으니 결코 만만한 영위가 아니게 된다. 그 신역이 침범당하여 저주와 흉기에 오염되는 사태는 예사 일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여기는 쓰루가오카, 전국1만이 넘는 하치만궁 중에서도 세손가락 안에 드는 중요한 영지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사태다. 그러한 사실을 가지고 현상을 가늠해보면 절망적으로 명쾌하다. 이 땅을 점거한 존재가 무신조차도 도망갈 정도의 폐신이라는 증거였다.
「나와라, 나키리 쿠보」
그리고, 이것이 7층에 있기 때문이야말로, 누구 하나 제8층에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지금 여기에, 그 재앙이 나타난다.
격통으로 절규하는 공간의 경계를 찢으면서 출현한 것은 미쳐버린 용의 눈동자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을 얼어붙게 하며 뇌를 당겨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맹악의 눈빛은 무시무시한 파멸과 살육으로 반전한 죽음의 태양을 생각나게 한다. 병들고 문드러지고 곪은 썩은 냄새를 풍기며, 쇠약해지기는 커녕 계속 부풀어 오르는 영력의 한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초신성폭발의 징조 그 자체, 이 땅에서 규격외의 대재해가 일어나는 것은 이미 결정났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세이쥬로의 앞에 나타난 것이 전체의 한조각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보다의 증명일 터. 고작 안구 하나뿐이라도, 너무나 크다. 너무나 거대하다. 하치만궁의 본전조차도 뭉개버리려 하는 사룡의 눈동자는 새어나온 쿠보의 한단이 나타내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무진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힘이 모두 흘러넘치고 응축하여 형태를 이뤄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의 위협은 인간의 상상을 몇 자릿수 규모로 초월하고 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을 쓰러트리는 것은 누구에게도 불가능. 이 장소의 세이쥬로는 말할 필요도 없고, 카루마, 키라, 유리카도 포함하여 같은 8등급 지정을 받은 신노조차 나키리 쿠보는 타도할 수 없다. 질이 다르다. 왜냐하면 신노 아키카게는 악마다. 불도에서 가리키는 텐구나 마라. 말하자면 외도타천사의 일종이다. 즉 그의 일은 본질적으로는 익살꾼과 유혹의 배후인물. 사람의 영혼을 마도로 끌고가서 신에게 등을 돌리게 하는 공작이 본업이라 해도 좋다. 그러한 교의를 자기 자신에게 부과하고 있기 때문에 전투력의 측면에서 반드시 높은 것은 아니다. 보통사람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상위폐신 가운데서는 오히려 취약.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신노에게 있어서 전투는 단순한 놀이다. 그의 가치관은 승패 따위에 흥미가 없다.
하지만, 쿠보는 다르다. 이것은 완전히 파괴신. 단순한 강함이 손 쓸 도리도 없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하늘을 멸망시킬 폐신으로서 가장 위험시 되고 있다.
「아마카스…… 역시 네놈, 미쳐있어. 이런 걸 불러내고 이제 와서 낙원이고 뭐고 없을 거다만」
미쳐날뛰는 독기의 한복판에서 그 누구도 아닌 세이쥬로가 탄식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면전에서 쿠보의 이름이 갖는 또 다른 의미가 밝혀진다. 즉 백귀―― 100의 귀신이다.
「오오에야마산에 왔더니~ 슈텐동자가 꼭대기에서~」 「청귀적귀 모아놓고~ 춤추고 노래하고 큰 소동이래요~」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공간에 무수한 구멍이 뚫려간다. 하나에 1미터 정도 크기의 정육각형이 계속해서 무서울 정도로 정확무비한 기하학 모양을 그려가며 나타난다. 마치 벌집이나 연꽃씨같은 종류의 핏기가 당기는 생리적 혐오감의 집합체. 그리고 그것들과 같은 속성을 갖고 있다면 이것이 단순한 구멍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누구에게나 알 수 있다. 구더기가 나온다. 노래기가 나온다. 뱀이, 거미가, 백골이…… 그 외에도 정체불명의 내장 같은 것들이 몸을 진동하며 날뛰면서 육각형으로부터 기어나온다. 벌레의 군단이라면 일단 신노가 연상되지만 이것은 분명히 종의 통일성이 전혀 없었다. 오로지 부정스럽고, 그저 기분 나쁘다. 인간에게 있어서 해로울 뿐인 이형의 무리라는 일 밖에 모른다. 즉 모두가 폐신인 것이다. 영력의 밀도나 강도는 쿠보의 발끝에조차 미치지 않지만, 그런데도 단지 한 마리만으로 보통의 인간에게는 치명적임이 틀림없다. 설사 세이쥬로 정도의 남자라도 이만큼의 이형을 상대로 하면 위험이라는 두글자가 명멸한다.
「흉장진…… 백귀야행인가」
쿠보의 마기에 노출되어 낙원으로부터 기어나오는 요괴들의 대군세――지만 6세력 최대최강이라고 주목받는 이 마군의 무서움은 숫자나 개개의 강함에만 의지하는 단순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부정스러움과 인간에 대한 원념 이외에 얼핏 아무 유사성도 없는 그들 흉장진에게는 사실 한가지 더 공통점이 존재하고 있었다. 모두 날뛰고 있다. 외치고 있다. 뒤를 신경쓰며, 초조하게, 허겁지겁 전신전령을 다해 도망치고 있다. 공포―― 그 등 뒤에 있는 절망적인 죽음으로부터의 두려움. 그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무서운 공통점이자 폭발력. 흉장들은 쿠보로부터 달아날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
간신히 기어나오는 데 성공한 오오무카데가 탄환의 속도로 세이쥬로에게 돌진했다. 그러나 그것은 의도해서 그를 공격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단지 쿠보로부터 도망취기 위해 장애물따위 눈에 들이지도 않고 전력질주 했을 뿐이다. 따라서 세이쥬로는 팔을 뿌리쳐 오오무카데를 튕겨냈지만 공황 중인 요괴의 돌격이 무를 리 없을 것이다. 크게 몸이 뒤로 젖혀진다. 그리고,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오오무카데 다음은 이무기였다. 다음은 부패한 야마이누였다. 백골화 된 말이 울고, 목이 없는 무사가 울부짖고, 제한 없이 연속되는 노도의 폭풍이 세이쥬로를 삼켜간다.
그 어떤 대해일이나 화쇄류보다 이 백귀야행은 위험할 것이다. 공포에 미친 마물들이 곁눈질도 주지 않고 밀어닥쳐 오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흉장들의 의사는 어찌됐든 그것이 쿠보의 적을 때려잡는 결사의 돌격대가 되고 마는 것에 변화는 없다.
「놀라서 어찌할지 모르는 귀신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지~」 「슈텐동자의 목을 따서~ 경사스레 마을로 돌아가지~」
관점을 바꿔보면 불쌍한 광경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모습에 사룡은 어떠한 감개도 안지 않는다. 어둠으로부터 수백수천의 손을 뻗어 도망치며 우왕좌왕하는 흉장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간다. 그리고 찢어갈기고, 먹고, 흩뿌린다. 단지 그뿐. 어떤 의미도 없다. 죽이고 싶으니까 죽인다.
「이히히히히히히히, 히히히히히히히, 키이이이이이하하하하하」
마성의 혈니에 파묻혀가는 하치만궁에서 나키리 쿠보의 홍소가 울려퍼진다.
「――우쭐대지 마라, 고작 괴물 주제에」
그러나, 운하처럼 밀어닥치는 흉장의 물결을 날려버리면서 재차 모습을 드러낸 세이쥬로는 조금도 기가 죽지 않았다. 아득히 위에 보이는 사룡의 위용을 오히려 깔보듯이 갈파한다.
「힘밖에 능력이 없는 건가. 전혀 부럽다고 생각되지 않는군. 내 말조차 이해할 수 없겠지. 그것이 네놈의 약점이다」
그 순간, 세이쥬로의 손으로부터 경악스러운 것이 출현했다.
빛나는 인광에 감싸여 탄생한 그것은, 틀림없는 그의 아내―― 히이라기 에리코나 다름없다. 스스로 죽인 자신의 여자를 비장이 카드라도 되는마냥 들고있었다.
「네놈같이 자아도 지성도 없는 무리에게 내 꿈은 통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통하는 다른 방법도 존재하지. 그래봤자 구진―― 규모가 도를 벗어나고 있을 뿐이고 본질은 자연현상과 다를 게 없겠지. 그렇다면 이용하면 될 뿐이다. 바람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에리코는 사망자다. 이제 없다. 현실에서는 뼈가 되어 그 영혼도 여기에는 없다고 알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세이쥬로가 창조한 꼭두각시이며 인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할 터인데, 왜일까.
「당분간 얌전히 있어줘야겠어. 네놈이 튀어나오면 내 사정이 곤란하니까」
너무 생생하다.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생생하다. 기술이 높기 때문에 정교하다는 도리 따위 아득하게 초월한 영역으로 이것은 에리코다. 그렇게밖에 안보인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뭐라는건가. 이것이 하늘의 세공조차 웃도는 지고의 작품이라 해서, 혹은 정말로 에리코 자신이라 해서, 이 상황에 대한 장기말로서는 의미불명으로 빗나가 있다. 쿠보에게 실력으로 대항하는 것이 불가능함은 세이쥬로도 잘 알 것이다. 따라서 다른 어프로치를, 지능이 없다는 성질을 자연현상으로 감정하고 이용하겠다고 한 결과가 이것인가.
「에리코, 일어나라」
죽은 아내에게 향하는 그 소리는 그 남자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상냥하게 자애로 가득 차 있다.
「너가 필요하다. 내 도움이 되는 것이 좋아」
그러나, 다음 순간에 일어난 것은 쿠보의 포학조차 별 거 아니게 보일 정도로 사람의 길을 벗어나고 있다 할 것이다.
「네 당신…… 기꺼이」
꿈꾸는 듯한 목소리가 흐르고, 그리고 동시에―― 정말이지 무엇 하나 주저함 없이 세이쥬로는 에리코를 쿠보에게 내밀었다.
그러므로 죽지 않는다. 그리고 끝없이 유린된다. 질리지 않는 완구에게 쿠보는 더욱 더 광희하여 웃고 구르며 기묘한 살육에 취해간다. 그리고 에리코도 인간으로서 물리적으로 체감할 수 없는 영역의 고통에 울부짖지만, 거기에 섞여있는 황홀한 도취를 숨기지 않았다. 마치 도움이 될 수 있음이 기쁘다고 말하는 듯이 이 커다란 괴로움을 받아내고 있다.
「그래 죽지마라. 견뎌라 에리코. 날 실망시킬 만한 짓은 용서 못해」
그걸 지켜보는 세이쥬로에게는, 반면에 무슨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실험관찰하는 과학자마냥 시약을 떨어뜨리듯 아내가 분발하도록 말을 뱉을 뿐이다.
「네가 참고 견디는 한 그건 거기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열심히 즐겁게 해주면 좋을거다. 여자의 일이지. 아니, 어머니의 일인가? 그녀석은 네게 질리려버리면 최후에, 당장 요시야를 죽이러 갈거다」
그 말에 거짓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 남자에게 남편이나 아버지로서의 정 따위는 한조각도 없음은 분명하다.
「사랑을 보여라. 내 도움이 돼, 아들을 지켜라」
요시야와 그 동료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격노한 나머지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들이 얼마나 에리코를 사랑했고, 괴로워하면서도 각오를 굳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단결했는가. 그것을 조소하기는커녕 흘겨보지조차 않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이 폭거. 귀축이라는 말도 부족하다. 애당초 뭣보다 구제할 도리가 없는 것은 세이쥬로가 즐기지조차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당연한 일을 당연히 한 것 뿐이고, 오히려 일이 귀찮다고 불만을 뱉을 듯한, 인간으로서 파탄한 오만함이 배어나오고 있다.
「당신 당, 신…… 세이쥬로, 씨…… 요시야……」
끝나지 않는 학살 중에서 가냘프게 새어나온 아내의 소리조차 이미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 처참한 역할이 끝날 때까지 대체 에리코는 몇 번을 죽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지, 역십자로 불리는 남자에게 그런 일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지금도 계속 울려퍼지는 쿠보의 홍소에 귀찮은 듯한 얼굴을 하며 파멸의 재해가 일어나는 전야의 7층에서 단지 짧게 중얼거릴 뿐.
「빨리 와라 요시야…… 난 네가 부럽다」
「아아, 나도 동감이야 세-지」
타츠미야저택을 뒤로 한 무모의 악마도 역시 마찬가지로 중얼거리고 있다.
「난 그들 사이에 들어가고 싶었어. 들어가고 싶었는데 말야…… 우후후후후후. 동료 따돌리기로 두고 가는 건 싫었다고. 그래서 난, 난 말야」
이해불능의 기괴한 망념을 흘려보내면서 그 눈은 꿈의 계층을 넘어 아득히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그곳에 그의 사랑스러운 소녀를 포함한 일곱 명이 들어온 것을 정확히 감지한 채 시선은 그대로, 7층에 고한다.
「기다려줘 세-지. 곧바로 갈게. 뭐 당분간은 너의 신부씨를 안주로 해서 같이 술이라도 마시지 않겠어. 그녀도 봐주기를 원할테고 역시 쿠보는 위험하니까 말이지. 섣불리 등을 보일 순 없다고. 당분간은…… 그래 당분간은 말야」
그날, 제6층은 빈 곳이 되고 제7층에는 신노와 쿠보, 그리고 세이쥬로가 구속되는 일이 됐다. 그에 따라, 우선 무대가 되는 곳은 4층, 5층―― 초대 전진관의 창립과 그 붕괴에 관련되는 역사. 시기는 메이지, 세상은 러일전쟁 한중간.
쿠라나군 첫 등장. 여기서 신노에게 신나게 갈굼 받고 pv3에서 진짜로 아가씨 발 핥고 있는 장면이 뜨자 유저들 사이에서 통칭 마조군으로 정착됩니다.
브금 カクレ는 이 장면 덕에 마조군 브금이란 인상이 강합니다. 나중에 나오는 경성반혼향이 더 마조군 브금 같아졌지만...
처음으로 급단의 협력강제 조건에 대해 설명이 나옵니다. 여기서 쿠라나군이 쓰는 기술이 정말로 급단이었는지 확실하지 않네요.
그리고 아마카스를 데려오라는 말에 신노가 살짝 흥분하는 장면이 신노답지 않은데 으음 .
그 복도는 깊은 장엄함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름답게 손질된 흰색의 대리석의 마루에는 얼룩 한 점 없이, 중앙에 깔려진 비색의 융단이 시각효과를 주면서 이 공간의 광대함을 강조하고 있다. 아니, 실제로 넓다. 가람[각주:1]이라고 해도 좋다. 횡폭만을 봐도 일반의 민가라면 통째로 들어가 버릴 것이고, 벽이 없는 천장에서 쏟아지는 조명은 만천하의 별하늘처럼 벽에 늘어진 은장식들을 현란하고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빛나게 하고 있다. 이렇게 고안한 건축은 계산된 신성함을 자아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 쉽다. 귀족―― 그것도 비교할 수조차 없는. 연면하게 닦여진 창의 장미는 전설에 이르러 반신의 경지에까지 도달하는 오래된 혈통의 거성이었다.
「Sancta Maria ora pro nobis Sancta Dei Genitrix ora pro nobis」
그 성스러움―― 어떤 자에게도 절대불가침이어야 할 장미의 성을 검은 방사능이 유린하고 있다. 타락시키고 더럽히는 일이야말로 내 모두라고 뽐내듯이, 억의 파리를 거느린 죄의 덩어리가 파멸의 열락을 구가한다. 그 침공은 귀부인을 에스코트 하듯 신사적으로 고요하면서, 그러나 어떤 강간마도 웃도는 무치와 폭식의 화신이었다. 융단이 썩는다. 은장식이 녹아내린다. 그것이 단지 걷는 것만으로도 마루와 벽면에 균열이 가고, 거기로부터 추잡하고 노래진 점액이 질척질척 배여나온다. 그렇게 되고 다시 바뀐 새로운 디자인은 한마디로 변소였다. 민중을 조람해야 할 천황의 위세로서 고귀한 위광이 연출되고 있던 공간이 한순간에 똥오줌이 들러붙은 변기처럼 더러워져 간다. 모독도 이정도면 신의 조화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사실 그 남자는 신부의 승복으로 몸을 감싸고 있다. 성상화를 거꾸로 하면서 패러디하는 기만스러운 그림과 같은 불손함이 있지만 자신은 경건한 신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틀림없다. 가라사대 폐신―― 신노 아키카게였다.
「Mater Christi ora pro nobis Mater Divinae Gratiae ora pro nobis」
윙윙거리며 날개소리처럼 메아리치는 기도의 분류. 그것은 명백히 그리스도교의 성가이면서도 이형으로 삐뚤어져 있다. 그 의미를 즉석에서 간파할 수 있는 자가 어느 정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편이 분명히 행복할 것이다. 불쾌한 생각을 하지 않고 끝낼 수 있다. 특히, 일본인이라고 한다면. 거기서부터 이것이 발생한 인과를 추측해버릴 것이다. 그 뒤에 있는 썩은 냄새를 수반한 암흑의 역사, 국가의 치부라 할 수 있는 썩어 문드러진 수렁은 그야말로 신벌 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므로. 공연히 걸어오는 신노의 다리는 무인의 들판을 가는 듯하다. 사실 그가 이 성을 방문하고 나서 지금까지의 요격은 전무했다. 여단급의 전력을 손쉽게 수용할 수 있을 대저택이면서도 위병은 커녕 사용인 한사람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다고 함정이 설치되어 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고 문짝은 잠궈놓지도 않았다. 방비의 측면에서 보면 분명히 논외이고, 겁에 질린 집안 사람들이 전부 도망갔다고 조소당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다른 것이다. 적의 본거지에서 잡병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은 하나의 가능성이 더 있다. 즉 그곳을 가로막고 있는 자는 반푼어치가 아닌 자. 거성을 지키는 데 있어 상응하는 절대의 강자가 버티고 있다는 전개이다.
「……으응?」
그것을 증명하듯 신노의 다리가 걸음을 멈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앞에서 제지당한 것이 있기 때문에 악마의 침공은 멈춘 것이다. 정지 당한 것은 다른 것도 아니고 이 성을 유린하고 있던 더러움 그 자체. 벽도 마루도 장식도 썩어 망가지는 것이 멈춘 것 뿐만 아니라―― 일순간에 재차 신성한 장엄함으로 가득 찬 공간으로 칠해졌다.
「헤에……」
물론 단지 그것만으로 신노의 힘이 패퇴했다고 할 것은 아니다. 더러움은 이 남자가 보통으로 흘려보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 말하자면 무의식적인 현상이니까 그 강함의 정도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다시 말하자면 호흡을 제지당한 것에 상응하는 압박을 신노에게 준 것은 틀림없었다. 평상시에 당연히 하고 있는 것을 반전 당한다는 사실은 그정도의 의미가 있다.
「이거야 놀랐네. 설마 네가 나온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
지금 다시 현란함을 되찾은 복도의 중앙, 집사복으로 몸을 감싼 청년가 영롱하게 서있다. 숨을 삼킬 정도로 단정한 용모의 청년이다. 이목구비의 수려함은 말할 필요도 없고, 자세의 올바름, 늘름하고 굳센 기색, 모든 것이 갈고 닦여져 극에 달하고 있다. 마치 이 청년 자체가 귀인을 꾸며주는 장식품인 것처럼.
「자랑의 비차각은 어떻게 된거야? 난 또 마중 나온다면 그쪽일거라고 생각했거든. 아아, 즉 이런 걸까나? 왕을 지키는 것은 금장의 일. 이야 영광이야 쿠라나군. 전진관 초대필두의 전설―― 만끽해보도록 할까나」
그리고 순간, 소리도 없이 화약고는 열렸다. 감고 있던 청년의 눈이 떠져 간다. 그것은 처염하고, 갈고 닦은 예검의 빛조차 지워버릴 만큼 전율을 환기하는 빛이었다. 왜냐하면 그 시선은 요령성처럼 젖어있었고, 단언컨대 제정신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있어야 할 마땅한 일부를 결핍한 자 특유의, 한편으로는 짐승에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도취라고 하는 열을 띠고 있다. 그는 사랑을 하고 있다. 몸을 태워버릴 정도로 애태우는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 이외의 자신의 가치따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그 전신은 아름답고 고성능인, 예술적 살인기계로 흐르듯이 변화한다. 가로막고 서는 아름다운 기사를 앞에 두고 오물과 추악의 무모인 악마는 비웃었다.
「무서운걸, 과연 타츠미야――」
자신에게 향해진 눈동자의 저편, 청년을 연옥에 몰아넣는 존재에게 저주하는 듯한 소리로 고한다.
「죄스러운 여자구나. 강하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라고 당신도 말하는걸까. 우후, 후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폭발하는 홍소는 독거미의 대군이 되어 공간을 장악한다. 재차 바꿔 고칠 수 없도록 더러움의 분류가 청년에게로 덤벼든다. 하지만 춤추며 떨어지는 비단의 한조각을 환시한 순간에 표적이었던 아름다운 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수십만에 이르는 거미의 지각과 그 실에 의한 그물을 빠져나는 것 따위 불가능, 그야말로 소실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예상외의 헛손질로 눈을 부라린 채 헛다리를 짚는 신노의 거동은 상황의 이상함을 무시하면 우스꽝스럽고 웃음을 권하는 추태였을 것이다. 어느 의미로 익살꾼의 면목약여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에 대한 손님의 반응은 가차없었다. 배후에서 신노을 관철한 예검이 가슴을 통과해 그 칼끝을 보이고 있다. 어떠한 절기에 의한 몸놀림인지 등을 맞대고 서있는 청년는 독거미 한 마리조차도 밟지 않았다. 칼날은 그대로 회전하고, 또 검은 집사복도 원을 그린다. 가슴을 도려낸 예검은 심장을 찢음과 동시에 폐를 잘라, 늑골을 가르면서 옆구리로 빠져나왔다. 뒤돌아보는 거동이 멈춰지는 가책 없는 살법이며 거기엔 한 치의 오차도 눈에 띄지 않는다. 고도로 가다듬은 기술을 가리켜 춤추는 것 같다고 하는 비유가 있지만, 이것은 그러한 장식마저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는 것이다.
마치 책이라도 닫듯이. 즉 어디까지나 당연한 일상행위로 밖에 안보인다. 실제 사정의 처참함과 비교하면 보는 자의 상식을 붕괴시키는 정도의 거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식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그만이 아니다. 여기는 악몽. 수많은 가치관이 난립하는 공포와 부조리의 나라니까. 신노 아키카케는 그 육체의 실체가 없다. 안개같은 입자이며, 방사능같은 더러움이며, 벌레의 집합체인 듯한 죄와 악의의 덩어리다. 여태까지 누가 어떻게 공격해도 명확한 타격을 줄 수 없었던 것처럼 기사의 참격도 당연하게 돌려 보내진다. 신노는 가슴을 찢긴 순간에 흩어지고, 형태를 잃고, 다시 굳어져서, 소용돌이 치는 나방의 무리가 되어 광란의 무용을 춤추고 있다. 거기서부터 쏟아지는 극채색의 분비물은 별가루 일루미네이션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성의 신성함을 조소하고 있는 것은 용이하게 안다.
「쿠라나군은 마조! 아가씨의 발을 핥는 것이 너무 좋아!」
차례차레 겹쳐져서 윤창하는 나방의 날개소리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렇게 들리는 것이다.
「넌 니 스스로 자지를 비비는 일도 할 수 없는 겁쟁이! 이쁜 것은 볼품 뿐이고 알맹이는 썩은 정액만 고여있어!」
저열한 야유이며 뻔한 도발이다. 어린애의 말싸움보다도 뒤떨어지는 치졸하고 천박한 욕지랄은, 그러나 그만큼 대상의 정신을 하릴없이 쥐어뜯는다. 죽고 죽이는 와중에 날리는 것으로서 어느 의미로는 매우 유효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뭣보다, 그 신노에게 심리전 따위 하고 있을 생각은 아마도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좋아하는 것이다. 취미다.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갖고 있는 건드리고 싶지 않은 성역에 흙발로 들어와 똥을 칠한다고 하는 배덕을. 그리고, 그렇기에, 악마의 속삭임은 과잉으로 비열한 표현을 하고 있어도 본질로부터 빗나간다고 하는 일만은 결코 없다.
땅에는 독거미. 공중에는 독나방. 분비물은 당연한 것, 닿은 것만으로도 피부에 썩은 상처를 발생시킨다. 만약 약간이라도 들이마시면 폐가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릴 터. 추격해오는 무서운 군단을 앞에 두고 아름다운 청년은 공포를 느낄 것인가. 경악할 것인가. 아니다. 어느 쪽도 아니다. 그의 표정은 의연하게 고운 도취에 젖은 채로, 그 검은 눈동자는 주인에로의 충성만이 가득 차 있다. 이것은 이거대로 광기의 소행이다. 눈앞의 오탁과 대치하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전혀 상대를 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앞의 도발도 예외 없이 귀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천장에서 맥락도 없이 백만의 나방유충이 추락한다. 그 모든 것이 땅에 닿음과 동시에 찌부러져 추잡한 황색이나 녹색의 체액을 깔끔하게 손질된 마루에 흩뿌린다. 공격으로서 아무 의미도 없고 단순한 갈굼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여자라면 누구라도 몸이 쑤심을 기억할 청년의 고운 얼굴을 어떻게든 삐뚤어지게 하고 싶다는 신노의 집착일까. 그러나 그러한 연속되는 악의와 조소의 소나기 속에서, 성의 집사는 한 마리의 독거미, 한 마리의 나방유충, 한조각의 분비물조차 아직도 닿지 않았다. 밀도적으로 회피 불가능한 융단폭격일 터인데 모조리 피하고 있다. 일견, 그것은 신기성의 귀면 무리들, 데이간의 체술과 통하는 것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확실히 별종의 것이었다. 자기존재를 영화하여 장애물이나 적의 경계망을 빠져나오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무엇인가의 보법, 이동의 의미개념을 조작하고 있는 것 같은. 순간이동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단언할 수 없는 기묘한 ‘늦음’이 관련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를 공격하는 자는 그 정확한 위치를 가늠하지 못하고, 방어할 때는 받아내는 타이밍이 혼란스러워진다. 라고는 해도 전술한 대로 신노에게 정당한 공격은 통용되지 않는다. 숨을 질러 발해진 예검의 일격은 소용돌이의 중심을 관철했지만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효과는 매우 기이했다. 아파아파 라고 날개소리가 윤창하지만 억양은 변함없이 계속 비웃고 있다.
그 비웃음을 잘라 지우도록 연속해서 허공을 찢는 참격의 질풍―― 결과는 전부 같지만 청년의 공세는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회전율을 올려간다. 호리호리한 외견으로부터는 상상도 가지 않는 체력이 있는 듯 그 기세는 쇠약해지지 않지만 여기에도 기묘한 위화감이 부수하고 있다. 노도라고 할 수 있는 공격을 찔러가면서도 격류라고 할 만한 인상이 왜인지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냉정하게, 담담하게, 환자를 진찰하는 의사처럼. 그래, 비유한다면 그야말로 촉진. 그는 되는대로 공격하는 것은 아니며 신노의 급소에 해당하는 무언가를 찾고 있다. 혹은, 급소 그 자체를 만들어 내려는 것인가. 신노의 불사성―― 그 방어력은 확실히 위협스러운 물건이지만 현상 자체는 투과형의 해법을 응용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돌파하기 위해서는 파괴형의 해법을 부딪히는 것이 가장 손 빠른 방법이지만, 그것을 바꾸어 말하면 단순한 힘승부다. 명쾌한 반면 힘으로 웃돌지 않으면 통용되지 않는다. 그러한 사실을 근거로 보건데, 신노와 해법의 분야에서 겨루는 것은 아마 헛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흐름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애당초 적의 씨름판에서 정면승부라는 선택 자체가 현명한 자가 할 짓은 아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다른 각도에서의 어프로치다. 그 중 하나로서 조건부라는 것이 존재한다. 몽계에 있어서 모든 사상은 술자의 정신강도, 즉 얼마나 강하게 그 꿈을 갈망하고 있는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그 전제에 대해서는 말한 대로 격의 상하가 그대로 승패를 나눈다. 꿈의 충돌에 있어서 그것은 아주 당연하며 현실에서도 적응되는 진리에 가까운 것이겠지만,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함정이 존재한다. 즉, 그것이야말로 조건부. 특정 순서를 밟아가는 것으로서 다른 자에게 협력을 강제하는 것. 그 순서란 물론 멋대로 얼마든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한사람에게 겨우 한 개나 두 개. 게다가 술자의 인생을 상징하는 강한 구애나 철학을 체현한 것이 아니면 안된다. 그러므로 전투라는, 극한의 부정과 투쟁을 하고 있는 가운데 성립시키는 것은 지극히 어렵지만 성립됐을 때의 보상은 굉장하다. 예를 들어 오른팔이 없는 전사가 있다고 하자. 그는 자기에게 결핍된 ‘오른쪽’이라는 개념에 광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어서 전투에서 적의 우측밖에 노리지 않는다. 그러한 고리를 자기 자신에게 걸고 있다. 그것은 물론 있는 그대로 생각한다면 결점일 것이다. 전투의 자유도를 스스로 제약하고 있으므로 어리석은 짓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러한 자를 앞에 두고 적은 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처할까.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이녀석은 오른쪽만을 노리고 있다. 즉 왼쪽은 노리지 않는다. 그때 양자 간의 합의가 성립하게 된다. 왼쪽은 필요없다고. 순간, 적은 스스로 왼쪽 반신을 전부 상실해버리든지, 최소한 기능부전에 빠질 것이다. 이것은 외팔의 전사만의 힘으로 성립한 것은 아니다. 그 누구보다도 적 스스로가 왼쪽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발동하는 이른바 공동기술이다. 따라서 저항하는 것은 우선 불가능. 자신이 한 것이며, 거기에 상대의 힘도 추가되고 있다. 혼자서 되돌리는 것 따위 할 수 없는 도리다. 협력의 강제―― 그것은 상상이 그대로 형태가 되는 꿈이기에 발상전환이라고 할 수 있겠지. 적의 힘을 줄이든지 스스로의 힘을 상승시키든지 그 어느 쪽도 아닌 무언이든지 자신의 그릇에서는 이룰 수 없는 경지로 실현시킨다. 법칙은 하이리스크·하이리턴. 조건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효과는 크고 결정적이다. 앞을 예를 들어 상상해보자면 오른팔이 없는 전사는 당연히 그곳이 사각이니까 적은 오히려 자신의 좌측에 집중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렇게 된다면 왼쪽을 경시한다는 조건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 눈치채지 못하게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유도하며 합의를 얻는 것. 지금 신노를 상대로 청년이 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거나 다름없다. 약점이 없으면 약점이 생기도록 하고 있다. 유동하는 죄와 더러움과 곤충의 소용돌이인 신노를 향하여 기관총도 저리 갈 연속 찌르기가 발해진다. 여전히 효과는 제로지만 완전히 무시하면서 5격, 10격, 20, 30―― 40, 그리고 50에 이른 순간.
「안메이, 마리아――글로오오리아아아아스」
처음으로 신노가 스스로 공격하며 나섰다. 소용돌이 치는 독나방의 대군이 낫과 같은 궤적을 그리며 청년의 측면을 강습한다. 찰나―― 성에 울려 퍼진 것은 불꽃 튀는 검극의 조음이었다. 그것은 곧 물체끼리 충돌한 사실을 나타내며, 즉 청년이 신노에게 닿았다는 증명이나 다름없었다.
「――훌륭해」
동시에 모든 독벌레가 소리를 내며 물러가고, 지금까지의 전투로 더러워진 저택 내의 부정을 남김없이 들이 마시면서 인간 형태로 돌아왔다. 청년과 마주 보면서 신노는 생글생글 미소를 띄운다.
「무례를 용서해줬음 해 쿠라나군. 살짝 시험할 필요가 있어서 말이지. 하지만 아무래도 쓸데없었을 뿐 아니라 내가 수치까지 당한 거 같네. 포기라고, 항복시켜 줬음 해」
그렇게 말하면서 그대로 양손을 올려 무저항의 뜻을 나타내는 신노의 얼굴에서는 뺨이 조금 찢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즉석에서 사라졌지만 경과를 보건대 방법의 회복효과임이 틀림없다. 만약 해법으로 무효화 했으면 인간 형태로 돌아왔을 때 상처 따위 남지 않았을 터다. 역시 청년은 신노에게 일격을 넣었다. 그렇기에 이 남자는 그것을 칭송하며 항복이라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탁이 있는데 말야. 네 주인님을 만나게 해줄 수 없는 걸까나. 긴히 상담이 있거든. 에이 경계는 하지 않아도 괜찮다구. 네 힘은 잘 알았으니까 바보같은 짓은 하지 않겠다고 맹세할게. 자, 어떨까나 쿠라나군」
그 호소에 대해 쿠라나라고 하는 청년은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몇초, 침묵을 지킨 후.
「……웃기는군」
전혀 재밌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양쪽이 만난 후로 그것이 처음으로 나온 그의 말이었지만 거기에 특별한 감정은 전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용모를 배신하지 않는 미성이었지만 돌이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울림이다.
「네놈이 맹세한다니 대체 어디에 말이지. 네녀석이 신불하는 놈에게? 아아, 그럼 이렇게 말해주지. 사역마 주제에 농담하지마」
내려놨던 예검이 다시 올라온다. 그리고 동시에 음성은 감정의 색을 띄었다. 그야말로 예리한 칼날으로 무장한, 선명한 단죄의 빛을.
「내 주인에게 알현하고 싶다고 한다면 네녀석 따위로는 부족한 배역―― 이곳에 지금 당장 아마카스를 데려와라」
「후핫――」
그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 신노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꾸물거리는 회충같은 가느다란 힘줄이 경련하면서 관자놀이에 떠오른다. 화내는건가, 아니 그것보다는……
「안되겠어, 전혀 웃기지도 않아. 너희들 따위가 모여서 그 사람에게 뭐라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 주인을 데려 오라니, 크게 나왔구나아. 우후, 우후후후후후……」
날개소리가 무수히 북적이며 서서히 격렬해진다. 처음에는 미세한 진동에 지나지 않았던 그것은 이윽고 저택을 진동시키는 폭음이 되어 왱왱거리며 날뛰는 흉충들의 난무가 되었다. 솟음치는 신노의 포효. 턱을 맞물리는 투구와 같은 소리로 악마가 구가한다.
「글렀어글렀어―― 전혀 이야기가 되질 않아. 기대를 빗나가는구나아 그정도인가. 이젠 됐어. 조져버리자. 너네들 아무것도 알지 못하네에!」
「지껄이지마 검은 파리. 내가 네놈을 통과하게 둘거라 생각하나」
지금까지의 수배는 될 터인 악의를 정면에서 받으면서도 청년은 조금도 기가 죽지 않는다. 오히려 입가에 희미한 미소마저 띄우면서 정면으로 요격하는 기개를 보인다. 앞의 공방에서 그는 신노의 방어를 뚫었다. 성과는 스친 상처 정도지만 효과가 아직도 지속 중이라면 지금부터 이 뒤는 분명히 사투가 된다. 신노도 물론 아직 전력의 일부분이라도 보이고 있을 리 없다. 지금 이 순간도 계속 부풀어 오르는 사념의 파도가 지옥의 악의에 바닥 따위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런고로 쌍방, 지금부터가 진짜의 제2국면. 더 이상 장난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막이 시작되려는, 그야말로 직전――
「――무네후유」
양쪽에게 유려한 목소리가 닿았다.
승려가 모여서 불도를 수행하는 청정한 장소를 의미하며, 사원의 건물을 총칭해서 가람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카루마가 어떤 인간인지 여기서 잘 요약됩니다. 과정은 개판 쳐놔도 마지막에는 자신이 웃게 된다는 절대의 자신을 가지고 있는 또 한명의 또라이. 한 집단의 수령으로서 꽤 재밌는 캐러였죠. 만선진으로 갈수록 우째 아니키 캐러가 되는 느낌도 있지만.
이 양반의 엉뚱한 행동 덕에 팔명진의 이야기가 꽤나 꼬여버리게 됩니다. 니코동에 가보면 '전부 이자식 탓' 이라고 멘트들이 날라다니는 꼴을 심심찮게 볼 수 있죠.
카루마는 히로시마 사투리를 씁니다. 처음에 들었을 때 뭐라고 떠드는건지 난감했었는데 뭐 좀 하다보면 적응되더라구요. 문제는 번역할 때가 더 난감하다 이건데 그냥 아는 사투리 대충 섞어넣었습니다. 따라서 카루마의 말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다음부터 카루마 나오는 장면은 번역 다 스루하고 싶다...
「얌전히 있으라 안카나. 죽고 싶은거냐 너희들」
그곳에는 음울한 듯한 눈으로 이쪽을 내려다 보는 귀신들의 주인이 있었다. 행동이 읽혀지고 있었던 것에 전율하면서 동시에 아키라는 눈치챈다.
「너, 어째서……」
앞의 우박도, 지금의 대사도, 그 의도는 경고였다. 자신들을 죽일 생각이라면 언제든 용이하게 할 수 있었을텐데 왜 그러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설마 이놈은 아군인건가? 그런 의념을 무시하듯이 남자는 하품을 하며 말을 계속한다. 그 태도는 호담함을 넘어서, 신경이 어떻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인수들은 손이 많아. 저기서 날뛰는 중대 정도가 코우가의 전군이라고 생각하는기냐 얼간이가. 아직 저쪽에 우글우글 있으니 네놈들 따위 물어 죽이는 건 손쉬운 일 아이가. 알겠으면 분수를 알고 기어 다니라 안카나. 전진관의 병아리들. 여기는 이 단 카루마님이 지켜주겠지라」
남자―― 단 카루마라고 지칭한 사람의 대사는 이중삼중의 의미로 경악이었다.
「뭣, 너…… 우리들에 대해 알고 있는거냐」
「천신관이라니, 그런 것까지……」
「있을 수 없어, 무슨 말을 하는거야」
그리고 지금 간신히 눈치 챈 것이지만, 남자의 차림새는 분명하게 이질적이었다. 어떻게 봐도 현대 일본인의 것은 아니다. 메이지, 타이쇼, 그 시대쯤의 학생같은 차림새라고 해야 할까, 지금도 저런 차림새를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겉멋으로 입고 있다고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평상복으로써 당연한듯 자연스럽게 입고 있는 거라고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앞의 천신관[각주:1]이라는 단어도 어딘가 기묘한 느낌이었다. 소리는 완전히 같지만 담겨진 의미에 대해 뭔가 어긋남이 있는 것 같은. 그런 수수께끼가 다수 있었지만 가장 불가해한 것은 최후의 한마디.
「우리들을, 지킨다?」
인연도, 관계도 없는 우리들을 어째서 이 남자는 비호해준다고 하는 것인가. 너무 불명해서 반대로 역으로 경계를 강화하는 아키라와는 정반대로, 카루마는 당연한 듯이 수긍하며 반응했다.
「오오, 타츠미야의 아가씨에겐 나도 의미가 있응께, 점수를 따두고 싶은고. 그런 이유로 너네들은 운이 좋은지라. 감사 해두라」
라고 역시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 장소에서 그의 도리를 음미할 틈은 없다. 현상, 알만한 것은 카루마의 여유. 신노와 키라와 세이쥬로를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전혀 위기감이 안보인다는 점이었다. 그 태도는 단순히 자기도취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자신은 절대 지지 않는다고 절대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너는 여기서 저 무리들을 쓰러트리겠다고 하는거냐」
「앙?」
따라서 아키라의 물음은 아주 정당한 것이었을 테지만, 그러나 카루마는 어이없는 것을 들은 듯이 매우 놀라…… 그리고는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쿠핫――하하, 하하하하하하! 저런 것들에에 이길 수 있냐고? ――히히, 카카카카! 이거 뭐, 너네들 웃게 해주는구먼!」
「뭣――」
예상 외의 반응에 아키라의 안에서 놀라움보다 화가 이겼다. 지금은 장난질 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다.
「너이자식 뭐가 웃긴거야! 스스로 한 말 아냐!」
죽이라고 그는 부하에게 명령했다. 그리고 실제로 아키라들이 아는 범위에서는 호각의 싸움을 보이고 있었고 카루마는 여유를 부리고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녀석은 자신의 승리를 믿고 있을 터. 그 외에 이끌어 낼 수 있는 결론은 없다. 그럴텐데 왜 웃지? 전혀 의미를 모른른다. 그 느낌은 린코들도 마찬가지로, 더더욱 배를 잡고 웃고 있는 남자를 전원이 노려봤다. 그 것을 간신히 눈치챘는지 카루마는 눈물을 닦으며 말을 잇는다.
「오오, 그라믄 죽일 생각이지, 그럴 생각도 없이 저런 상대들에게 싸움 걸겠냐믄. 근데 말이제, 그 장소에서 이겼느니 졌느니, 죽었느니 죽였느니 하는건 사바의 도리여. 한단의 결정은 그랗게 달콤한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너네 정도도 알거 아닝게. 쿠라나에게 배우지 않았나보제? 특히나 쥬스벨―― 저런놈은 내 꿈을 알지도 모르닝께. 코우가와의 전투에 방해가 들어올 가능성도 일단 상정하고 있다만은 설마 역십자까지 끼어들어오니, 얽혀벼린 조건을 끼워맞추기는 어렵지라. 그런고로 너의 물음에 답한다면 이렇게 말하겠지라. 여기서 죽일 수 있는가하면 그거 무리여」
즉 현상은 감당하기 힘들다. 불명확한 표현 투성이었지만 요약하자면 그런 것으로, 그러나 카루마에게는 변함없이 초조함이나 위기감이 전혀 안보인다. 그것은 어째서일까. 모순에 당혹하는 아키라들에게 더욱 더 그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한다.
「그래도 말했었지라, 웃는건 나다. 비록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 손바닥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녀석은 없다 안카나. 기억해두라」
「하아?」
「하지만 당신, 이건 예상 외라고……」
「아까부터 말하는 것들이 엉망진창이야」
「으디가 멍청아」
의외라는 듯이 코를 울리며 담뱃대의 재를 떨어뜨리는 카루마. 풍속화를 그대로 그린 듯한 행동거지로, 도저히 신산귀모의 인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듯조차 보인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긍정했다.
「나는 반사신경의 인간이라고. 앞을 읽는 수싸움 같은거 하지도 못하고 흥미도 읎어. 힘 빠진다고 고런거. 남자의 싸움치고는 풍류가 없다 안카나. 그래서 별로 생각 안한다고. 임기응변, 그때그때야. 너희들같은 범인은 내가 바보로 보이겠지만, 그래도 진 적이 없지라. 그리고 앞으로도 난 지지 않아. 다시 한번 말하제」
그는 재차 선언한다.
「웃는 것은 나다. 이것은 이미 결정했구마. 설사 부처나 천마라 할지라도 단 카루마의 뒤는 잡을 수 없지라. 알겠냐 병아리들」
「…………」
자부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의 호언장담은 이미 망언에조차 분류할 수 있다. 카루마의 주장에는 전혀 이치라는 것이 없다. 하지만 아키라들은 이때 전부 공포를 느꼈다. 자신을 믿는다고 하는 일점에 대해서는 이 남자 또한 제정신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꿈에서는 무엇보다도 흉악한 힘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인지라고. 자신이 마음에 그리는 이상의 형편을 의심하지 않는다. 도를 넘은 낙관이라고 한다면 그걸로 끝이지만 체현하는 데 이 정도로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단순한 힘이나 강함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제, 그래도 결과는 형편 좋게 도달할 것인제. 내가 뭘 해도 안해도, 만일 우리 일당이 여기서 몰살 당한다 해도. 그것은 전부 나를 위한 복선인제. 그렇게 되는 것 이외는 있을 수 없지라」
더욱 넓게, 최종적인, 전략으로서의 우위성을 믿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천운이라 할까. 자신에게는 그러한 가호가 씌이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지금, 예를 들어 자신의 세력이 괴멸해도 카루마는 눈썹 한가닥도 까닥하지 않을 것이다. 가라사대 마지막에 웃을 수 있다면 문제 없음. 과정에 흥미는 전혀 없는 것이다. 점이 아니라 면을 본다. 개체보다 장소를 보고, 장소보다 더 나아가서 흐름을 본다. 부하를 인솔하는 장으로서 그러한 자질은 확실히 필수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극단――이라기보단 방탕한 말 굴리기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카루마는 마치 눈가리개를 하면서 장기를 두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상태 자체가 승리를 약속하는 방정식. 그렇게 말하고 있고, 실제로 이겨 온 배경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남자를 앞에 두고 아무렇지도 않게 있으라고 말하는 것이 무리인 이야기다. 더해서, 거기서부터 하나 더 무서운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아키라, 너 알고 있지?」
「……아아, 과연 거기까지 바보는 아냐 」
과정은 적당. 국소적 결말에는 흥미가 없다. 거기서 비차[각주:2]를 먹히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면……
「이자식, 아군 따위가 아냐」
지켜둔다고 했던 조금 전의 말도 마찬가지로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여튼 마구잡이――[각주:3] 늘어놓은 기보에 일관성 따위 존재하지 않고, 그저 변덕으로 180도로 입장을 바꾸는 일도 있을 수 있다. 당연하게도 직접 노려지는 것보다 어느 의미로는 이쪽이 더 무섭다. 맹수에 바짝 다가가서 바보같이 안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해가 통하지도 않고, 서로 알 수도 없는 존재가 옆에 있으며, 그녀석은 우리들을 일순간으로 죽일 수 있는 송곳니와 손톱을 가지고 있다. 서투르게 자극을 하면 최후지만, 무엇이 방아쇠가 될지는 모른다. 그리고 그 예감은 싫은 의미로 맞아버렸다.
「하지만 뭐랄까. 너네들 이상하지 않나?」
누구보다도 이 장소에서 도리를 경시하고 있을 터인 남자가 아키라들의 정합성을 의미불명하게 의심하고 있다. 그 가느다란 눈은 순수한 호기심이 가득 차 있으면서, 동시에 무수한 빙침을 포함하고 있다. 시선으로 구멍투성이 되는 듯한 기분을 맛보면서 내장의 색이 음미되고 있는 심지가 상쾌할리가 없었다. 아프지 않게 배 속을 탐색당한다―― 확실히 이 현상은 아키라들에게 그런 것이었다. 그래, 알 수 없다. 무슨 일인가 알 수 없는 것이다.
「힛――, 키하하」
왜, 어째서? 뭐가 도대체? 솟음치치는 곤혹을 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그것을 간파한 듯 카루마는 웃었다. 피가 흐르지 않는 파충류의 혀로 빨린 듯한 오한이 서려왔다.
「과연, 과연과연―― 이거 꽤나 곤란하지라, 그렇게 오는거냐! 안되겠구먼, 놀이에 너무 취하겠어. 이거 우짠디야 이거―― 우하하하하!」
총화와 흑랑의 굉호를 빠져나가, 야차는 마침내 키라에게 도달했다. 세이쥬로의 손이 허공에 침식하며, 거기로부터 나타나려고 하는 뭔가가 규환한다. 신노는 눈감고 양손을 벌려서 순교하는 성인과 같이 기도를 바친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 확실히 결정적인 국면을 맞이하려 하고 있는 그들 3가지가, 다들 어찌 되든지 상관없어졌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럴 때가 아니다. 그저, 손가락이 보인다. 자신들에게 있어 운명을 좌우하는 한수를 반상에 두는, 마구잡이의 손가락이――
「이거야 원 아가씨에게 야단 맞겠구먼」
한숨 섞인 군소리는, 마음에 드는 찻잔을 깨버린 정도로 절실했다. 그래, 그는 찻잔을 깨버렸다.
「좋구만. 싫증이 안나 이 한단은」
동시, 귀면의 세 명이 일제히 그 공격대상을 변경했다. 그에 따라 키라들은 허를 찔려 남김없이 행동박자가 떨어진다. 흥이 오르기 시작한 전투에 몰두한 순간, 적수가 전부 물러난 것이니까 당연한 반응이겠지. 신노는 익살스럽게 정말로 굴러버릴 정도이다. 어쩌면―― 그런 상황이 조금만 더 찰나로 계속되고 있었으면 귀면 무리들은 전멸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말에 불과하니까 자신의 의지로 절대로 퇴각할리는 없는 존재다. 따라서 카루마―― 이 전개는 주인의 지휘에 다름 아니지만, 정작 그 당사자는 전혀 부하의 전황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조화같은 타이밍, 그저 우연으로 정리할 수 없다. 누구도 내 뒤는 잡을 수 없다고 호언 할 만큼은 되는 것이다. 비록 되는대로 부딪히고 다니는 적당적당이라도 그에게는 반드시 이러한 상황이 따라온다. 너무나 명쾌한 그 전진은 귀면 무리가 철저히 자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면도 있을 것이다. 의도를 느낄 수 없으므로 행동의 예측 등은 불가능하고, 급기야 사령관마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거기서부터 연결되는 기습의 효과는 능히 짐작할 만하다. 아무리 당당한 것이라도, 대상의 이해를 빠져나가고 있으면 본질적으로는 불의타다. 신음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암살자들의 흉풍은 그야말로 죽음 그자체.
카루마가 언급한 전진관(戦真館)과 아키라들이 재학 중인 학원인 천신관(千信館)의 음독은 둘 다 센신칸(せんしんかん)으로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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